[모심의 주역] 췌(萃) 괘로 읽은 산청군 수해복구 봉사

2025-08-11 09:02:49

지난 8월 6일 경남 산청군 신안면 수해 현장에서 청소 등 복구 작업을 마친 자원봉사자들. 김재형 제공 지난 8월 6일 경남 산청군 신안면 수해 현장에서 청소 등 복구 작업을 마친 자원봉사자들. 김재형 제공

지난 8월 6일 경남 산청군 신안면 수해복구 현장에 자원봉사 다녀왔습니다.

산청 수해는 10명의 사망자가 생기고 군 지역 전체가 피해 지역이어서 급한 곳부터 먼저 복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로 군인들이 투입되고 규모가 큰 자원봉사 단체들이 산청군과 협력하며 수해 복구를 합니다. 문제는 당장 급하지 않고 장비가 아닌 손으로 일해야 하는 곳은 자원봉사 순위에서 밀립니다.

죽거나 다치거나 큰 어려움을 겪은 분들이 있어서 내가 겪은 일은 일도 아니야 하지만 혼자서 해 볼 엄두가 나지도 않습니다.

흔히 말하는 도움의 사각지대입니다.

산청에는 오래전부터 지역과 밀착된 여러 시민운동이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산청의료사회적협동조합은 1000명이 넘는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고, 청년모임 ‘있다’, 지역 인문 운동 모임인 ‘그늘과 언덕’ 등 여러 단체가 힘을 모아 ‘산청·합천 수해복구 자원봉사자 연결방(‘연결방’)‘을 오픈채팅방으로 열었습니다.

자원봉사를 원하거나 봉사가 필요한 분이 도움을 요청하면 매일 오전 오후 봉사자들을 보내는 연결 고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산청은 군 전 지역에서 도로 유실이 일어나서 곳곳마다 도로가 통제되거나 공사 중이었습니다. 산사태로 마을 전체가 매몰된 곳도 있어 산청군 공무원들은 휴일도 없이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처지여서 개인 자원봉사자들을 연결할 여력이 없습니다.

연결방은 재난을 겪은 분들이 편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데, 오픈채팅방이다 보니까 전국에서 이 방에 들어와서 봉사 일정을 확인합니다.

거의 매일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산청으로 모여듭니다.

이 과정에서 수해복구 연결방 자원봉사자들은 평소에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산청에서 만나는 경험을 합니다. 며칠 전에는 ‘김제동과 어깨동무’ 회원들이 다녀가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방식의 봉사가 있습니다. 봉사자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선결제 금액이 많아져서 봉사자들에게 차와 식사를 대접할 수도 있습니다. 재난 뒤에 일어나는 상호부조의 ‘재난 유토피아’가 실현되고 있습니다.

저도 봉사를 마친 뒤 ‘남다른 이유 카페’에서 차와 간식을 대접받았습니다. 이 카페는 그늘과 언덕 단체에서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이 모든 일이 의료협동조합, 인문생활협동조합, 청년모임 등 평소에 의미 있는 조직이 힘을 조금씩 모아왔기에 가능했습니다. 생활운동이 재난 대응 조직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한 사례입니다.


주역의 마흔다섯 번째 괘인 췌괘(萃卦)는 이런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췌괘는 조금조금 여기저기에서 마음을 모으는 사람입니다. 췌괘에는 이렇게 마음을 모아가는 두 사람이 나오는데, 한 사람은 왕이고 또 한 사람은 대인(大人)입니다.

왕이 마음을 모으는 이유는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여기서 왕은 현재의 기초자치단체 군수나 의원 정도 될 겁니다.

대인은 왕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다루는 사람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지역에서 다양한 시민운동과 마을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입니다.

이들은 평소에 각자의 역할을 하지만 공동의 소명과 과제가 생기면 그들이 모은 힘을 다 함께 씁니다. 재난이나 위험을 막는 일은 모두가 나서야 합니다.

여러분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산청·합천 수해복구 자원봉사자 연결방’을 검색해서 참여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모인 힘이 희망을 만들어 갑니다.


萃 亨. 王假有廟. 利見大人 亨 利貞. 用大牲 吉 利有攸往.

췌 형 왕격유묘. 이견대인 형 이정. 용대생 길 이유유왕.


사람들의 마음을 모은다. 왕이 참가하고 많은 사람이 모여 종묘에서 제사를 지낸다. 그 자리에 지혜로운 대인도 함께한다. 큰 제사라 큰 희생 제물을 바쳤다. 그렇게 마음을 모아 앞으로 나아간다.


彖曰 萃 聚也. 順以說 剛中而應 故聚也. 王假有廟 致孝享也. 利見大人亨 聚以正也.

단왈 췌 취야. 순이열 강중이응 고취야. 왕격유묘 치효향야. 이견대인형 취이정야.

用大牲吉利有攸往 順天命也. 觀其所聚而天地萬物之情 可見矣.

용대생길리유유왕 순천명야. 관기소취이천지만물지정 가견의.


우리가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왕이 지혜롭게 중도를 지켜 존경하며 따를(順) 수 있었고, 함께 있으면 기쁘고(說) 왕께서 아끼시는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왕의 제사는 선왕들께 드리는 효도의 마음이고, 왕은 지혜로운 대인과 함께 국민을 위한 좋은 정치를 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 큰 희생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지내고 함께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천명, 시대의 소명을 따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지켜보면 세상 만물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이는구나.


象曰 澤上於地 萃 君子以 除戎器 戒不虞.

상왈 택상어지 췌 군자이 제융기 계불우.


땅을 파서 연못의 둑을 만들어 흘러오는 물을 모으고 제방을 잘 관리하는 것처럼 위험을 대비해서 장비를 손보고 경계를 강화한다.


빛살 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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