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 2025-10-29 20:12:56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왼쪽)과 김용범 정책실장이 29일 경북 경주 APEC 미디어센터에서 한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약 두 달 만에 또다시 마주 앉았다. 양국 정상은 이날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관세 후속 협상을 타결로 이끌어낸 것은 물론 북핵 문제, 안보 동맹 현대화 등을 놓고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미 투자 확대와 국내 방위비 증액을 내세우면서 미국 측의 북미 대화 추진을 당부하기도 했다. 관세 협상 극적 타결로 ‘케미’를 드러낸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굳건한 한미 동맹 관계를 이어 나가자는 데 입을 모았다.
■관세 협상 타결… 세부 내용은?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2차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 협상에 합의했다. 당초 이날 회담에서 타결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양국 정상이 접점을 찾은 것이다. 대통령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이날 한미 정상회담 결과 브리핑을 통해 한미 관세 협상의 핵심 쟁점이었던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와 관련, “연간 200억 달러를 상한으로 총 2000억 달러를 직접 투자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2000억 달러는 일시 투자가 아니라 외환시장 타격을 덜어냈다는 평가다.
김 실장은 “2000억 달러 투자는 한 번이 아니라 (연 200억 달러) 한도에서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투자하게 된다. 이는 국내 외환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라며 “이는 외환시장에 미치는 범위를 최소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1500억 달러는 기업들이 조선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김 실장은 “조선업에 투자하게 되는 1500억 달러, 이른바 ‘마스가’는 기업 주도로 추진되며 기업 투자는 물론 보증도 포함하는 것으로 협의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미 투자에서 원금 회수 장치도 마련했다.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문구를 명시해 무분별한 투자를 방지했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이로써 양국 상호 관세는 15%가 유지됐다. 대미 수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 관세도 15%로 일본과 동일하게 조정됐다. 의약품, 목재는 최혜국 대우를 받는다. 항공기, 제네릭 의약품, 미국 내 생산되지 않는 천연자원은 무관세 적용으로 합의됐다. 반도체의 경우 대만과 대비해 불리하지 않는 관세가 적용됐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김 실장은 관세 협상 ‘팩트시트’ 발표 여부에 대해서 “안보 분야와 합쳐서 1~3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통상 관련 양해각서(MOU)는 문안이 거의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한미 안보 동맹, 조선 협력도 강화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경주박물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가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동맹 현대화를 언급하며 방위비 증액과 방위 산업 발전을 통한 대한민국 방위 역량 강화를 내세웠다. 이 대통령은 “한미 관계는 동맹의 현대화를 통해 미래형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미국의 방위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방위비 증액은 저희가 확실하게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국 관세 협상과 대미 투자와 관련해서는 “대미 투자 및 구매 확대를 통해 미국의 제조업 부흥을 지원하겠다”며 “조선 협력도 적극적으로 해 나가겠다. 그게 양국 경제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한미 동맹을 실질화하고 심화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조선 협력은 한미 조선 협력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이를 바탕으로 한미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대통령에게 조선 협력 중요성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조선업의 대가(master)가 됐다”며 “선박 건조는 필수적인 일로, 필라델피아 조선소와 다른 여러 곳에서 우리가 (함께) 일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여러분들이 들어와 미국에서 배를 함께 만들고 있다. 짧은 기간 안에 최고로 올라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한미 관세 후속 협상에 대해서는 모두 발언에서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 대통령이 이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드러낸 핵 추진 잠수함 도입 의지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핵 추진 잠수함을 필요로 하는데 공감을 표하면서 후속 협의를 해나가자”고 설명했다. 위 실장은 이날 경주 미디어센터 브리핑을 통해 “동맹 현대화에 대한 미국 측의 적극적인 협력 의사를 확인한 게 핵심 성과”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정상 외교 슈퍼 위크’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미중 정상회담 30일 부산에서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태평양 안보 문제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놓느냐에 따라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 전략이 탄력을 받을 수도,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최근 희토류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지만, 일단 강경 조치를 중단하고 합의 모색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양국 정상이 이번 부산 정상회담에서 화해 메시지를 발신한다면 대한민국은 ‘가교 국가’로서의 위상을 쌓을 기회로도 꼽힌다. 이번 회담에서는 중국의 최근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유예, 미국의 대중 100% 추가관세 부과 보류를 포함한 양측의 무역 전쟁 확전 자제를 담은 합의안이 도출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