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 2022-11-01 17:59:27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 1일 한국에 주재하는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 총리는 정부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웃음을 지으며 농담조의 발언을 해 부적절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한 총리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외신기자들과 만나 140분 가량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한 총리는 사고원인에 대한 질문에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결국 '크라우드 매니지먼트(군중 관리)'"라며 "이런 쪽에 대한 충분한 제도적 뒷받침과 체계적인 노력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지난달 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한 외신기자는 이 장관의 발언을 언급하며 "과연 방지하지 못했던 행사였는지 많은 비난이 있었다"며 "주최 측이 없었던 행사였다고 해서 과연 방지하지 못했던 참극이었는지 다시 한 번 질문드리고 싶다"고 물었다.
이에 한 총리는 "행안부 장관이 설명한 것은 지금 기자께서 물으신 그런 의도는 아닌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기본적으로 크라우드 매니지먼트에 대한 제도가 한국에선 여러 입법적인 문제 등 때문에 조금 미흡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분명히 현재 치안을 담당하는 인력을 많이 투입을 했더라도, 그런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조금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치안 담당 인력을 많이 투입했더라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발언을 두고 또 다른 외신 기자는 "이 장관의 말처럼 총리도 경찰이나 소방 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건가"라고 재차 질문하기도 했다.
한 총리는 "이 장관이 말한 내용이 '경찰을 아무리 집어넣어도 소용없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며 "국민 안전을 최종적으로 책임지고 무한대로 책임지는 것이 우리 정부다. 하나의 이유가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외신 기자들이 '주최 측이 없는 행사였다고 해서 과연 방지할 수 없는 참극이었는가', '경찰 책임이 어디까지인가', '현장 경찰의 초동조치가 원인이었나' 등 질문을 이어가자, 한 총리는 "경찰 조사가 완결되면 투명하고 분명하게 내·외신에 밝힐 것"이라는 원론적인 취지의 답변들을 반복하며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기자는 "사태 이후로 정부 관리들이 위로 말씀과 슬픔 표현했지만 그 누구도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다. 그럼 이것이 정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조사 이후에 결과에 따라 사과할 것인지"라고 물었다. 아울러 "총리로서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 진솔한 사과를 건의할 생각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한 총리는 "그 문제에 대해선 오늘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중앙정부의 안전정책에 대한 주무부서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과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대통령에 사과를 건의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미국 NBC 기자는 "젊은 친구들이 그곳에 가 있던 것이 잘못된 것인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같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라고 보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한 총리는 "젊은이들의 잘못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며 "경찰 수사에 의해서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건 정부의 무한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기자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있는 청년들이 또다시 이런 시국을 감당하면서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한 총리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의기소침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많은 젊은이가 아직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본다"며 "대부분의 사례를 보면 한국은 여전히 대응을 잘하는 면모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기자는 "한국에서는 인재가 주기적으로 일어난다고도 한다"며 "그때마다 안전 사회를 정부가 강조했는데 왜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는가"라고 질의했다.
한 총리는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우리 국민의 안전에 대한 요구 등에 대해서 정부가 좀 더 확실하게 충족시키도록 추가로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BBC 기자는 "공공기관 중에서 안전을 총 책임지는 기관이 어디인가, 이태원에 대해서는 누가 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한 총리는 "한국은 재난관리 주관 기관을 정해놓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라며 "그런 행사의 경우에는 대개 지자체가 좀 더 모든 관장을 하는 것으로 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 이태원에 투입된 경찰 인력은 작년보다는 조금 더 많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한 총리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밀었다고 하는데 확인했느냐'는 질문에는 "큰 길 두 개를 연결하는 조그만 골목길이 세 가지가 있었는데 왜 그 중간에서는 참사가 일어나고, 양쪽에 있는 유사한 좁은 골목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는지, '상식적 비전문가'가 가지는 궁금증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나 절차에 기반을 둔 판단이 아닌 다른 판단을 하기에는, 지금은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참사로 중국인 4명이 숨진 것과 관련, 중국의 기자가 "외국인 사망자에게 어떤 지원을 했고 앞으로 할 것인가"라고 묻자 한 총리는 "외국인 피해자는 한국 국민과 정확히 똑같이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 총리는 이날 브리핑 초기에 통신 오류로 통역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등 문제가 생기자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는 한 외신기자가 "한국 정부의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라고 보시는가"라고 질문한 이후 통신 장애 현상으로 현장이 어수선해지자 가볍게 웃으며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없나요?"라고 주변에 물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의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외신기자들 앞에서 이 같은 농담을 던진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총리의 발언을 담은 영상은 이날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에 확산되는 가운데, 누리꾼들은 "이 시국에 농담이라니", "외신기자 질문에 빗대 말장난을 했다" 등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