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빛 축제’ 즐기고, 상큼한 숲정원 만끽하고

[경북 경주시에서 여름 나기]

어른·어린이 모두 만족 엑스포대공원
빛 활용한 미디어아트로 신나는 체험
솔거미술관 통유리 연못 풍경은 환상

천년숲정원, 시원·청량·깔끔 산책공간
작은 개울 외나무다리 인기 ‘포토스폿’
새 울음소리 들으며 멍때리기에 제격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2024-07-04 07:00:00

경북 경주시 여행의 핫스폿인 황리단길에서 경주시청이 추천하는 향토음식 별채반에 찰보리빵까지 즐겼지만 밖으로 나갈 엄두는 나지 않는다. 뜨거운 태양이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첨성대, 그리고 동궁과 월지를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그나마 조금 덜 더운 오전 일찍 두 곳은 물론 불국사까지 둘러보았길 망정이지 오후에 돌아다닐 계획을 잡았더라면 낭패를 당할 뻔했다. 오후에는 에어컨을 즐길 수 있는 실내공간을 돌아보고, 나무가 우거진 숲 그늘에서 편안히 쉬어가기로 했다. ‘경주에서 여름 나기’ 여행이다.

두 여성이 나무가 가득한 경북천년숲정원 다리를 느긋하게 건너고 있다. 남태우 기자 두 여성이 나무가 가득한 경북천년숲정원 다리를 느긋하게 건너고 있다. 남태우 기자

■경주엑스포대공원

처음에는 어린이만 좋아하는 공간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곳곳을 둘러보면서 마음은 조금씩 바뀌었다. 화려한 ‘빛 축제’인 미디어아트는 물론 깊은 인상을 남기는 독특한 미술관, 그리고 자연사박물관까지 어린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장소였다. 각 건축물 사이에는 계림지 해먹공원, 화랑숲과 비밀의 정원, 아평지 등 숲과 연못이 설치돼 다양한 전시물과 체험을 즐기다 잠시 쉬기에도 제격이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 먼저 달려간 곳은 계림지 해먹공원이다. 이름 그대로 해먹은 물론 벤치가 대거 설치돼 편안히 앉아서, 또는 누워서 시간을 보내기에 좋아 보인다. 평소 즐기기 힘든 해먹에도 올라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 본다. 걸어 다닐 때는 몰랐는데, 해먹에 누워 있으려니 제법 선선한 바람이 몸을 이리저리 간질인다.

숲에 벤치와 해먹이 설치돼 편히 쉴 수 있는 경주엑스포대공원 계림지 해먹공원 전경. 남태우 기자 숲에 벤치와 해먹이 설치돼 편히 쉴 수 있는 경주엑스포대공원 계림지 해먹공원 전경. 남태우 기자

해먹공원에서 졸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향한 곳은 실내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미디어아트를 즐길 수 있는 경주엑스포기념관 ‘살롱헤리티지’다. 이곳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은 민화에 나오는 동물을 증강현실(AR) 등 디지털로 만날 수 있는 ‘상상 동물원’이다. 벽과 바닥에는 빛을 이용한 민화 속 동물이 등장하는데, 손이나 발로 건드리면 반응을 보인다. 종이에 그림을 그려 스캐너에 집어넣으면 정면 벽에 영상으로 등장한다. 여러 사람이 올린 동물 그림은 퍼레이드라도 벌이는 듯 반복적으로 벽을 오간다. “내가 그린 그림이 지나가”라고 외치는 어린이의 얼굴에는 반갑다는 표정과 신기하다는 표정이 교차한다.

두 여성이 경주엑스포대공원 살롱헤리티지에서 ‘상상 동물원’을 즐기고 있다. 남태우 기자 두 여성이 경주엑스포대공원 살롱헤리티지에서 ‘상상 동물원’을 즐기고 있다. 남태우 기자

‘살롱헤리티’에서 나가면 바로 인근에 ‘찬란한 빛의 신라’라는 주제로 더 다양한 미디어아트를 보여주는 ‘천마의 궁전’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미디어아트는 첨성대 안으로 들어가는 형상을 상징한다는 LED 조명 조형물이다. 아무리 봐도 이걸 왜 첨성대라고 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5분간 다양한 색으로 변화하는 조형물을 지나는 기분은 흥미롭다.

신라시대의 대표적 유물인 천마총 금관, 녹유귀면기와, 금동물고기를 구현한 미디어아트가 다음 차례다. 손이나 발로 건드리면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는 공간이어서 꽤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시간을 기록하다-삼국사기, 삼국유사’라는 제목의 방이다.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는 데다 꽤 신기한 인터랙티브 공간이어서 여기도 만져보고 저기도 만져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거울의 방’인 ‘연꽃’도 화려하기는 ‘시간을…’에 뒤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다양한 연꽃무늬가 사방을 에워싼 거울에 새겨져 어디가 입구인지 출구인지, 어디가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연꽃무늬가 사방을 에워싼 경주엑스포대공원 천마의 궁전 ‘거울의 방’. 남태우 기자 연꽃무늬가 사방을 에워싼 경주엑스포대공원 천마의 궁전 ‘거울의 방’. 남태우 기자

‘천마의 궁전’에서 나와 오르막 숲길을 따라 걸어 ‘솔거미술관’으로 향한다. 뜨거운 태양만 아니라면 인근에 있는 ‘시간의 정원’과 ‘아사달조각공원’도 둘러볼 만하지만 무더위를 무릅쓰기는 쉽지 않아 이날만큼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솔거미술관’은 유명 건축가 승효상 씨의 작품이다. 마침 ‘현지우현’이라는 주제로 이응노 화백과 박대성 화백의 교류전이 오는 8월 4일까지 진행 중이다. 이색적인 그림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사실 많은 관람객이 이곳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최고 인기의 포토존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전시실에 설치된 큰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아평지 풍경이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설명하면 관람객 중 상당수는 이 통유리 앞에서 사진을 찍을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다. 직접 가서 풍경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어봐야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다.

한 여성이 솔거미술관 전시실 통유리를 통해 바깥의 아평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남태우 기자 한 여성이 솔거미술관 전시실 통유리를 통해 바깥의 아평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남태우 기자

■경북천년숲정원

경주엑스포대공원 실내공간에서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을 즐겼으니 이제는 야외에서 선선하게 숲 바람을 느낄 시간이다. 지난해 4월 개장한 ‘경북도 1호 지방 정원’ 경북천년숲정원이 목적지다. 이곳에 가기 전에 인터넷에서 다양한 글을 읽어보니 평가가 엇갈렸다. ‘더운 여름에는 가지 말라’는 글이 있는가 하면 ‘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지내기 딱’이라는 반대 글도 있었다. 어느 게 맞는지 알려면 현장에 가 봐야 한다.

기자가 내리는 결론은 ‘후자가 맞다’는 것이다. 경북천년숲정원은 시원하고 청량하고 깔끔하고 상쾌한 공간이었다. 그늘이 없는 공간은 무덥기 짝이 없지만 상당 부분을 덮은 커다란 나무 숲 그늘 아래에서 쉬거나 걸어보니 이보다 좋은 여름 피서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남성이 경북천년숲정원 입구 외나무다리 아래 숲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다. 남태우 기자 한 남성이 경북천년숲정원 입구 외나무다리 아래 숲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다. 남태우 기자

경북천년숲정원 입구에서는 햇빛 가리개용 종이 모자를 무료로 나눠준다. 공짜로 구한 모자를 쓰고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사람들이 보인다. 다리 아래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는데, 개울 위에 통나무로 만든 외나무다리가 있다. 외나무다리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으면 시원한 풍경을 담을 수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셔터를 누른다.

개울 양쪽은 키 큰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다. 위쪽은 목련길, 아래쪽은 무궁화길이다. 산책로에 설치된 벤치에는 사람들이 앉아 무더위를 피하는 중이다. 그곳으로 내려가 보니 햇살이 거의 들지 않아 상당히 시원하다. 왜 여기에 몰려 한참이나 앉아 쉬는지 이유를 알 만했다.

다리를 건너 직선으로 걸어가면 활엽수가 우거진 산책로가 보인다. 모자를 쓴 인부들이 자전거를 타고 산책로를 지나간다. 이제 네댓 살로 보이는 어린이는 혼자 킥보드를 밀며 신나게 바람을 가른다.

경북천년숲정원 인부들이 자전거를 타고 활엽수 산책로를 가로지르고 있다. 남태우 기자 경북천년숲정원 인부들이 자전거를 타고 활엽수 산책로를 가로지르고 있다. 남태우 기자

활엽수 산책로는 돌아나올 때 걷기로 하고 일단 개울을 따라 숲길을 걷는다. 환한 미소를 짓는 수막새를 모티브로 한 ‘천년의 미소원’을 지나니 다시 짙은 숲길이 나온다. 숲길 끝부분 담장 너머는 푸른 벼가 자라는 논이다. 숲길 끝에는 햇빛을 가리는 차양막이 설치되고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벤치가 보인다. 이곳에 누워 낮잠을 즐기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을 것 같다.

경북천년숲정원을 에워싼 논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에 차양막이 설치된 벤치가 놓여 있다. 남태우 기자 경북천년숲정원을 에워싼 논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에 차양막이 설치된 벤치가 놓여 있다. 남태우 기자

벤치마저 지나 다시 숲길을 걷다 보면 방금 본 활엽수 산책로가 길게 뻗어 있다. 숲길 사이 벤치에 앉아 산책로를 바라보며 한참 멍때리기에 들어간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드물고, 들리는 소리라고는 이름 모를 새 울음소리뿐이다.

아까 킥보드를 타고 지나갔던 어린이가 다시 산책로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지쳤는지 킥보드를 끌고 가다 한참이나 서 있더니 다리 앞에서 부모를 발견하고는 다시 킥보드를 신나게 밀어젖힌다.

정원 한쪽 구석에 화사하게 핀 보라색 버들마편초 꽃이 희미한 바람에 산들거린다. 뜨거운 태양에 지쳤는지 꽃도 고개를 약간 숙인 듯하다.

한 어린이가 경북천년숲정원 활엽수 산책로에서 킥보드를 끌고 가고 있다. 남태우 기자 한 어린이가 경북천년숲정원 활엽수 산책로에서 킥보드를 끌고 가고 있다. 남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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