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훈 기자 jch@busan.com | 2024-12-04 09:37:20
윤석열 대통령이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선포했다”는 ‘비상계엄’ 사태가 6시간 만에 종료됐다. 선포 자체도 느닷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실행 역시 허술했다. 선포한 지 2시간 반 뒤 국회의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에 따라 계엄을 유지할 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윤 대통령이 당초 계획한 계엄 시나리오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군의 대응이 그 변수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10시 25분께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한 시간 만에 계엄 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할 계엄사령부가 설치됐고,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임명됐다. 박 총장은 오후 11시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의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을 발표했다.
이후 계엄군 일부는 곧바로 계엄 해제 권한이 있는 국회로 향했다.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 예하 제1공수특전여단과 수도방위사령부의 정예병력 등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차량과 헬기 등을 통해 국회로 진입했다. 국회 본청 진입 시도하는 현장 영상을 보면 계엄군은 방탄모와 마스크, 방탄조끼 등을 착용했고 특수전 사양으로 현대화된 K1 기관단총 등으로 무장했다. 일부는 야간투시경도 소지해 사실상 완전 무장 상태였다. 이들 중 일부는 본청 유리창을 깨고 여야 의원들이 있는 본회의장 등으로 진입하려 했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군이 국회에 난입했을 때 수도방위사령부 특임대가 이 대표를 체포·구금하려 했던 시도가 폐쇄회로TV(CCTV)로 확인됐다”며 “확인해보니 이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려는 체포대가 만들어져서 각기 움직였다”고 말했다. 국회 표결을 무력화하기 위해 사전 계획대로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야당 보좌진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소화기를 뿌리며 저항하자 본회의장 진입에 실패했다. 유혈 사태를 야기하는 물리적 충돌 역시 발생하지 않았다. 일부 계엄군은 민주당 당직자와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총구를 겨누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탄 발사라는 극단적인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장에 있었던 한 보좌관은 “계엄군들이 본청 유리를 깨고 진입은 했지만, 표결을 막기 위해 의원이나 보좌진을 상대로 무력을 쓰겠다는 그런 태도나 의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여야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시켰다.
국회 정문 등을 차량으로 진입하려던 계엄군들 역시 시민들이 맨 몸으로 막아서자, 별다른 충돌 없이 차 안에서 대기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강하게 국회에 진입하려 했다면 유혈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특히 계엄군은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 이후 우원식 국회의장 등의 요구에 따라 국회에서 큰 소란 없이 철수했다. 이에 우 의장은 이날 새벽 긴급담화에서 “계엄 선포에 따라 국회로 출동했지만, 국회 의결에 따라 즉각 철수한 것은 민주주의와 함께 성장한 군의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불행한 군사쿠데타의 기억을 가진 우리 국민들도 오늘 상황을 지켜보며 우리 군의 성숙한 모습을 확인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비상계엄에 동원됐던 군은 45년 만에 ‘계엄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됐지만, 그나마 유혈 사태라는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일부 군 지휘부의 잘못된 명령에 따르긴 했지만, 젊은 군인들이 그나마 이성적으로 대처해 계엄 사태가 조기에 종료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군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계엄사령관 임무를 수행한 박안수 총장에 대한 강력한 법적 처벌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