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 2024-12-08 18:28:02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내세우면서 사실상 정국 주도권 바통을 넘겨받았다. 윤 대통령 탄핵에 동조하는 듯한 입장을 내비치다가 한 대표 본인이 윤 대통령의 ‘대안’을 자처하고 나선 모양새다. 향후 한 대표가 들끓는 국민 여론과 야당 공세, 당내 혼란을 틀어막을 수 있을지에 이목이 쏠린다.
한 대표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질서 있는 대통령의 조기 퇴진으로 대한민국과 국민에게 미칠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정국을 수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정부나 당이 대통령을 포함해 그 누구라도 (계엄 사태를)옹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 퇴진 전까지 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2선’으로 후퇴하고 한 총리와 국민의힘이 협의해 국정 운영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의 ‘직무 정지 상황’을 강조하고 그의 실권(失權)을 부각한 것이다. 향후 한 총리가 국정을 대리 운영하게 되지만, 사실상의 정국 주도권은 집권 여당 대표인 한 대표에게로 넘어온 셈이다. 윤 대통령은 전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임기를 포함한 정국 안정 방안을 여당에 일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한 대표는 지난 6일 윤 대통령 탄핵을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냈다가 다음 날 입장을 바꿨다. 여기엔 ‘탄핵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당내 여론을 반영했다는 관측 속에 향후 한 대표 본인의 대권 가도를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도 깔려있다. 한 대표는 지난 6일 자신이 소집한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로이 드러난 사실들을 감안할 때,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윤석열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후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회동, 윤 대통령 대국민 담화를 거쳐 ‘질서 있는 퇴진’으로 방향타를 돌렸다. 탄핵 반대 입장을 굳힌 것이다.
윤 대통령의 사과를 끌어낸 국민의힘은 이를 명분으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부결, 투표 불참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급한 대로 단일대오를 갖추고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막아낸 것이다.
향후 한 대표는 민주당의 움직임에 주시하며 대응 전략을 수립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앞으로 매주 ‘수정 탄핵안’ 표결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한 대표는 이탈 표 차단 단일대오를 유지하고, 이와 별개로 한 총리와 다방면의 수습책을 마련해야 하는 숙제도 안았다. 다만 다수 친윤(친윤석열)계는 물론, 윤 대통령도 전적으로 한 대표의 뜻에 따라줄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대통령의 직무 배제, 질서 있는 조기퇴진 등의 방안 역시 당내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의 의사결정 기구와 당원, 국민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로, 일방적인 결정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탄핵을 막아선 당정을 향한 국민 반감도 당장 직면한 문제다. 민주당 등 야당은 “헌법적 권한 없는 위헌 통치, 2차 내란”이라며 한 대표에게도 공세를 펴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앞으로 한 대표가 시선 돌리고 움직이는 곳마다 가시밭길일 것”이라며 “탄핵을 막아선 한 대표가 ‘질서 있는 퇴진’을 어떻게 그려나갈지에 대해 그의 정치생명이 달려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