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에도 가족 몰래 일하신 아빠… 하고 싶은 말 많은데 어떻게 보내요” [반얀트리 화재]

부산 공공기관 퇴직한 60대 가장 숨지자
뒤늦게 알게 된 유가족들 빈소에서 오열
결혼 앞두고 단꿈 부풀었던 40대도 참변
유족, 산재보험 가입 등 미비 알고 분노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2025-02-16 18:20:15

14일 화재가 발생한 부산 기장군 기장읍 반얀트리 호텔 공사 현장에서 소방 헬기가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14일 화재가 발생한 부산 기장군 기장읍 반얀트리 호텔 공사 현장에서 소방 헬기가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 공공기관에서 일하다 퇴직한 아버지가 그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16일 오후 3시 부산 해운대구의 한 장례식장.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해운대 부산 호텔 앤드 리조트’ 화재 사고로 아버지 A(64) 씨를 잃은 딸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 병원에는 반얀트리 리조트 화재로 숨진 노동자 2명의 빈소가 마련됐다. 빈소 내부에는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이들의 슬픔을 담은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영정사진과 장례용품, 고인을 조문하기 위한 공간이 갖춰졌지만, 아버지를 잃은 딸은 아직 그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루에 몇 번씩 조문객을 맞이하고 영정사진을 볼 때, 그제서야 아버지의 부재가 무거운 아픔으로 가슴에 내려앉는다. A 씨의 딸은 “인력사무소 소장에 따르면 아버지는 굳이 일주일 내내 나와서 일을 하셨다고 한다”며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무뚝뚝한 경상도 부녀지간이라 생전에 대화가 많이 없었던 게 가장 후회스럽다”고 애달픈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유족들은 이번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가 명확히 밝혀지길 원한다. A 씨의 딸은 “우리 아빠가 몇 층에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왜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불이 날 만한 환경에서 작업을 했다면 안전 수칙은 제대로 지켜졌는지 궁금하다”며 “삼정기업에서 현재 세 가지 요인이 유력한 원인으로 꼽힌다고 하던데,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선 말해주지 않았다.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꼭 밝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근에 차려진 B(44) 씨의 빈소에선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B(44) 씨는 용접 일을 한 지 20년이 넘은 베테랑이었다. 사고 당일에도 그는 일용직 노동자 신분으로 현장에서 용접 일을 했다. 일평생 성실히 일해 오던 그는 최근 인생을 함께하고픈 짝을 만나 늦은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B 씨의 어머니는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눈물을 보였다. 그는 B 씨를 회상하며 “유독 어릴 때부터 뭘 해줘도 맛있게 먹고 욕심도 없었다”며 “돈 많이 벌어서 꼭 여행을 보내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이야기하던 착한 아들이었다”고 기억했다.

유가족들은 원청인 삼정기업이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던 B 씨의 산재보험 가입을 진행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행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은 보험 가입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해당 사업주에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한다. 일용직 노동자도 물론 가입 대상이다.

B 씨의 삼촌은 “5~6명이 일하는 소기업도 들어야 하는 게 산재보험인데, 부산 중견기업인 삼정기업이 기본도 지키지 않아놓고 유가족을 찾아 ‘법적인 책임이 없다’ ‘몰랐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유가족 협상단을 꾸리려는 모습에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유가족들은 현재 사고 원인과 책임을 밝히기 위한 단톡방을 만들고 있다. B 씨의 아버지는 “유가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 사고가 났는지 명확히 아는 일”이라며 “사고가 은폐되지 않게 원인을 밝히고,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지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이뤄져야 한다”며 울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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