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고물가 ‘노 마크 찬스’ 때문?

커피, 라면 등 식품 가격 줄줄이 인상
탄핵 정국 속 물가 관리 소홀한 사이
기업들 잇따라 이윤 챙기기 나서

환율 급등·원재료 비용 상승 등 영향
저소득층, 고물가로 더 큰 부담 떠안아

영남 산불로 농산물 수급 불안정 우려
물가 못 잡으면 더 큰 위기 올 수 있어
정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조치 필요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2025-04-05 09:00:00


먹거리 물가가 치솟으면서 케이크 가격이 4만 원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졌다. 투썸플레이스는 지난 26일부터 커피와 음료, 케이크 가격을 올렸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서울 시내 한 투썸플레이스 매장에 케이크가 진열돼 있는 모습. 연합뉴스 먹거리 물가가 치솟으면서 케이크 가격이 4만 원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졌다. 투썸플레이스는 지난 26일부터 커피와 음료, 케이크 가격을 올렸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서울 시내 한 투썸플레이스 매장에 케이크가 진열돼 있는 모습. 연합뉴스

물가가 끝없이 치솟고 있다. 원·달러 환율 급등과 원재료 비용 상승 등의 여파로 최근 가공식품을 비롯한 여러 제품의 가격 인상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올해 가격을 인상했거나 인상 예정인 식품 및 외식업체는 40개가 넘는다. 커피, 빵, 라면, 햄버거 등 서민들이 자주 소비하는 식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면서 물가 부담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른바 ‘물가 쓰나미’가 몰아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속에서 정부가 물가 관리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사이, 기업들이 이런 ‘노 마크 찬스’(no mark chance)를 활용해 가격 인상을 단행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어떤 게 올랐나?

가격 인상은 품목을 가리지 않는다. 시기와 관계없이 이어지고 있다. 안 오르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라면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다. 농심은 지난달 17일부터 신라면을 1000원으로 올리는 등 14개 라면 제품의 가격을 올렸다. 오뚜기도 지난 1일부터 27개 라면 중 16개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7.5% 인상했다. 빵, 과자, 빙과류 등도 마찬가지다. 파리바게뜨는 2년 만에 빵 96종과 케이크 25종의 가격을 평균 5.9% 인상했으며 뚜레쥬르 역시 이달부터 빵과 케이크 110여 종의 가격을 평균 5% 올렸다. 매일유업도 이달부터 컵커피, 치즈, 두유 등 51종의 제품 가격을 평균 8.9% 인상했다. 주요 아이스크림 역시 가격표를 높여 붙였다. 최근에는 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햄버거, 맥주도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커피 가격도 예외가 아니다. 스타벅스가 1월 원두 가격과 환율 급등을 이유로 가격을 인상하자 다른 커피 브랜드들도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이와 같은 가격 인상 흐름은 정부의 공식 통계에도 반영될 정도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3월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3.6%로 1년 3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올해 1~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2.1%)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김치 15.3%, 커피 8.3%, 빵 6.3% 상승하며 가공식품 물가 전체를 끌어올렸다. 지난해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1%대에 그쳤다.

농림축산식품부 전한영 대변인이 2일 정부세종청사 농식품부 기자실에서 농식품 물가동향 및 대응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농림축산식품부 전한영 대변인이 2일 정부세종청사 농식품부 기자실에서 농식품 물가동향 및 대응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가 상승 이유는

물가 상승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식품업계는 가격 인상이 원재료 비용 상승, 원·달러 환율 급등,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 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순한 비용 증가만으로 대규모 가격 인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실제로 식품업체들이 가격을 올릴 때 그 근거를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탄핵 정국이라는 혼란 속에서 일부 기업들이 이를 기회로 가격 인상을 단행한 측면도 존재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몇 달간 정부가 물가 관리보다는 정치적 이슈에 집중하는 사이, 기업들이 소비자의 부담을 고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3월 중순 주요 식품업체들과 간담회를 열어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기업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격을 계속 올리고 있다. 정부의 ‘호소’가 실효를 거두지 못한 셈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가격 인상이 경쟁보다는 가격 담합에 가까운 움직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단순히 3월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 3.6%라는 숫자는 그리 커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단순히 통계상 보고된 숫자보다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특히 식품 가격 상승은 가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더욱 위축시켜 내수 경기의 부진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지금이라도 물가 상승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소비 위축과 경기 둔화 현상은 불 보듯 뻔하단 얘기다.

소비자물가가 석 달 연속 2%대 오름세를 나타낸 것으로 조사된 2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커피가 진열돼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3월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3.6%로 1년 3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소비자물가가 석 달 연속 2%대 오름세를 나타낸 것으로 조사된 2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커피가 진열돼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3월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3.6%로 1년 3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소비자물가 추이와 주요 품목 증감률. 연합뉴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소비자물가 추이와 주요 품목 증감률. 연합뉴스

한국경제인협회는 최근 10년간(2014∼2024년) 소득분위별 소비자 체감물가 추이를 분석한 결과 최빈층인 소득 1분위의 체감물가 상승률이 23.2%로, 고소득층인 5분위(20.6%)보다 2.6%포인트 높았다고 2일 밝혔다. 연합뉴스 한국경제인협회는 최근 10년간(2014∼2024년) 소득분위별 소비자 체감물가 추이를 분석한 결과 최빈층인 소득 1분위의 체감물가 상승률이 23.2%로, 고소득층인 5분위(20.6%)보다 2.6%포인트 높았다고 2일 밝혔다. 연합뉴스

■저소득층 부담 가중

문제는 이러한 가격 인상이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서민이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 인상이 가속화되면서 그들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다. 특히 저소득층은 물가 상승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다. 500원, 1000원의 차이가 일부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저소득층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가구는 필수 소비재인 식료품비 상승이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가 2014년부터 2024년까지의 소득분위별 체감물가 상승률을 분석한 결과 소득 하위 20%인 1분위의 체감물가 상승률은 23.2%로 나타났는데, 이는 상위 20%인 소득 5분위(20.6%)보다 2.6%포인트 높은 수치다. 소득이 낮을수록 물가 상승의 압박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저소득층의 부담을 가중하는 주요 원인은 식료품비와 난방비 등 생존과 직결된 필수 비용이다. 저소득층은 처분가능소득에서 식비와 주거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득 1분위 가구는 식료품·비주류음료(20.9%), 주택·수도·광열(20%), 보건(12.6%) 순으로 지출 비중이 높았지만, 소득 5분위 가구는 교통(13%), 교육(10.5%), 오락·문화(9%) 순으로 지출이 많았다. 이처럼 식료품 가격 상승은 저소득층에게 치명타가 된다는 얘기다. 고물가가 무서운 이유는 빈곤층을 비롯한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기 때문이다. 물가가 급등하면 생계비는 늘어나지만, 소비 여력은 줄어들어 사실상 실질소득이 감소하게 된다. 고물가를 ‘소리 없는 도둑’이라 부르는 이유다.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영남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인해 지역 농가도 큰 피해를 보면서 향후 농산물 수급 불안정에 따른 가격 인상 가능성도 커졌다. 게다가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외식 물가가 오를 가능성도 있다. 자칫 고물가가 상당 기간 지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 이대로 두면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혼란이 어느 정도 정리된 지금, 정부가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가를 잡지 못하면, 탄핵 정국보다 더 큰 경제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고물가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은 결국 행정이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소리 없는 도둑’이 내수 경기 회복을 지연시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이에 정부는 기업들의 가격 인상에 대해 단순한 요청이나 협조·당부를 넘어 보다 강력한 주문과 함께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한 과도한 가격 인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도 필요하다. 아울러 기업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가격 인상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그 근거를 명확히 공개하고 불필요한 가격 인상은 자제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적 장치가 필요하다.

정부가 제대로 된 물가 안정 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노 마크 찬스'를 악용한 과도한 가격 인상이 서민들에게 직격탄을 날릴 수밖에 없다.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지금도 벼랑 끝에서 힘들게 버티고 있다. 이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날뛰는 물가부터 잡아야 할 때다.



정달식, 부산일보 논설위원. 부산일보DB 정달식, 부산일보 논설위원. 부산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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