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2025-06-23 10:49:16
국내 유일 해양 특화 영화제인 ‘국제해양영화제’(KIOFF)가 여덟 번째 항해를 마치고 닻을 내렸다. 한국해양진흥공사(부산시와 공동 주최)라는 든든한 새 엔진을 장착한 제8회 국제해양영화제는 지난 19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개막한 후 지난 22일까지 나흘간 10개국 34편의 장·단편 영화로 관객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전했다.
‘바다가 닿는 곳’(Where the Sea Touches Us)을 주제로 한 제8회 KIOFF는 다큐멘터리 ‘소피아의 상어 이야기’(Her Shark Story)를 개막작으로 선택했다. 여성 해양생물학자의 시선으로 본 인간과 고래상어,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유려한 영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그나시오 워커와 데니스 아르케로스 감독은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 달려와 생생한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워커 감독은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오늘이 내 작품을 가장 큰 스크린으로 본 날”이라고 말한 후 “영화에 등장한 고래상어를 실제 바다에서 만나면 스크린보다 훨씬 커 두려움까지 느껴질 정도”라고 촬영 중 느낀 소감을 밝혔다.
지난 20일과 21일은 21편의 작품이 스크린에 걸렸다. KIOFF가 심혈을 기울인 다양한 주제의 섹션이 망라됐지만 잔뜩 흐리거나 장대비가 쏟아진 날씨로 조직위의 애간장을 태웠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이틀간 상영관에는 빈 좌석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조직위는 오히려 올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작인 플로우(Flow) 등 일부 작품은 매진이 될 정도로 관객이 몰렸다고 전했다.
올해 KIOFF에서는 거의 모든 작품의 GV가 진행됐다. 유명 감독이나 배우가 참석하는 GV는 궂은 날씨를 뚫고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원동력이 됐다. 그만큼 영화제 조직위에서도 게스트 초청에 많은 공을 들였다. 조하나 조직위원장은 “예산이 부족하면 가장 힘든 게 게스트 초청인데, 이번에는 참석할 수 있는 분들은 거의 다 모시려 했다”며 “예년에 비해 늘어난 후원과 지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폐막식은 22일 오후 6시 윤성은 영화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됐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무대를 확장하고 있는 4인조 탱고 밴드 ‘친친탱고’가 바다와 관련된 곡들을 연주해 분위기를 띄웠다.
곧이어 폐막작인 정윤철 감독의 신작 ‘바다 호랑이’가 일반 상영관 개봉(25일)에 앞서 상영됐다. 김탁환의 장편소설 <거짓말이다>를 원작으로 한 ‘바다 호랑이’는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수색에 참여했던 고 김관홍 민간 잠수사를 주인공으로 만든 작품이다. 사회적 참사의 또 다른 피해자들을 성찰적으로 조명하며, 바다와 해양을 대하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다.
상영에 앞서 짧게 진행된 무대인사에는 제작사 굿프로덕션 윤순환 대표와 박호산 배우가 참석해 투자 무산 등 지난했던 제작 과정의 비하인드를 들려줬다. 윤성은 평론가는 “저예산 영화의 한계를 꼼꼼한 서사와 참신한 형식으로 돌파해 비범한 영화가 완성됐다”고 평했다.
‘국도 7호선’(Route 7)으로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상영지원 공모에 선정돼 부산을 찾은 재일교포 3세 전진융 감독은 주연배우 소지 아라이(한국명 박소희)와 함께 GV 참석에 이어 폐막식에도 자리를 지켰다. 지원작에 나란히 선정된 ‘인생 세탁소’의 주연 문희경, 경남 통영시의 섬마을 추도를 영화제 섬으로 만든 전수일 감독도 폐막식에서 만날 수 있었다.
조하나 조직위원장은 “힘든 상황에서도 꾸준히 영화제를 이어오다 보니 잊지 않고 찾는 ‘가족’ 같은 관객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며 “내년 제9회 영화제에서는 더 알차고 풍성한 프로그램과 부대 행사로 가족 맞이를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