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3색 性이야기] 거절 당한 밤에 생각할 것들

임의현 성 심리학자

2025-06-23 18:04:41

파트너에게 성적 요구 또는 제안을 거절당하는 순간, 어떤 이들은 말없이 등을 돌리고 어떤 이들은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며 다음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안을 한 입장에서는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닌가?”, “이제 난 매력이 없나?”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스쳐간다. 이런 반응은 욕구불만을 일으키는 것을 넘어 자기 존중감, 애착, 관계에 대한 해석까지 얽힌 실타래마냥 복잡한 심리상태를 만들고 만다.

예를 들어보자. 남편은 섹스를 관계 유지의 필수 요소로 생각하는 반면, 육아와 일 사이에서 남편의 요구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부인이 있다. 남편은 반복된 거절을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아이가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은 틀림없지만 자신이 아내에게 이전만큼 관심을 받지 못함에 상처를 받는다. 이런 상황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섹스를 둘러싼 욕구와 감정이 ‘관계의 언어’로써 얼마나 다르게 전달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거절 상황은 단순한 ‘섹스 거절’이 아니라 관계 해석의 충돌로 문제를 야기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거절민감성이 높은 사람의 경우 이 충돌을 더욱 격화시키는 방향으로 반응한다. 거절민감성이 높은 사람은 ‘오늘은 피곤해’라는 말을 ‘너랑 하고 싶지 않아’ 혹은 ‘ 이제 당신이 별루야’로 확대 해석할 수 있고 이것은 큰 심리적 상처를 경험하게 만든다.

꼭 결혼한 부부가 아닌 오랜 연인들에게도 성적 거절은 갈등의 씨앗이다. 오랜 연애로 감정이 전보다 건조해진 커플의 경우 성적 거절을 매력 상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상대는 직장 문제나 가족 간의 갈등과 같은 심리적인 문제들로 감정 표현과 성접촉이 줄었을 뿐인데 파트너가 다른 해석을 하는 순간 갈등이 시작된다.

하지만 모든 거절이 관계의 위기를 뜻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거절과 수용의 반복은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지탱해주는 핵심이 될 수 있다. 성적 거절이 있다 하더라도 협상과 대화를 통해 관계를 더 성숙시킬 수 있다. 그들에게 성적 거절은 그저 서로 다른 박자를 가진 두 사람의 속도를 조율해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거절 그 자체보다 그 거절을 해석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방식이다. 섹스는 일방적 요구가 아닌 감정과 타이밍이 맞아야 하는 고도의 협상이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데 당신은 왜 싫어?”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면 서로의 욕구와 한계를 얼마나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인지 짐작할 수 있다. 거절로 인해 상처를 받는 순간 ‘나는 왜 이 거절에 상처받고 힘들어하는가?’라며 생각할 필요가 있다. 관계는 늘 나란히 걷는 게 아니다. 어떤 밤에는 내가 앞서지만 또 어느 날엔 내가 뒤쳐진다. 섹스를 거절 당한 어느 날 밤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나 봐’라는 생각보다 ‘우리는 충분히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쓰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고 건강한 관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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