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 2025-09-24 19:30:00
한국거래소가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부산에 추진 중인 자율형 사립고, 이른바 금융자사고에 대해 노조가 적극 반대하고 나서면서 내부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거래소 측은 노조 반대와 상관 없이 2029년 초 개교를 목표로 절차를 밟아나간다는 입장이지만 노사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앞둔 예민한 시기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한국거래소지부(한국거래소 노조) 관계자는 24일 “임원들은 추진하고 있지만 조합원들이 (금융자사고 설립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면서 “자사고, 특목고 자체가 ‘존치돼야 한다, 폐지돼야 한다’는 논란이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데 자사고 설립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는 건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소외계층을 위해 쓰여야 할 사회공헌 사업 자금이 이른바 귀족학교로 불리는 자사고 설립에 투입되는 것은 명분도 공익성도 떨어진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노조는 지난 7월 한국거래소 부산 본사 건물이 있는 BIFC 건물 1층과 서울사무소 1층에 ‘ATS(대체거래소)에 점유율 넘겨주고 거래소 주식시장은 한국의 대표시장으로서의 운명을 다하셨습니다’ 등의 내용을 담은 근조 현수막을 내걸었는데 현수막에도 자사고 관련 언급이 나온다. 노조는 당시 “영업이익 감소해도 자사고를 짓는 경영진의 합리적 판단은 운명하셨습니다”며 경영진의 무능을 꼬집는 사례 중 하나로 금융자사고를 언급했다.
노조 측은 금융자사고 관련 대응 여부를 놓고 내부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거래소 한 관계자는 “대체거래소가 빠르게 성장하며 한국거래소를 위협할 정도가 되다 보니, 젊은 직원들 사이에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거래소는 대체거래소의 점유율 확대에 맞서 거래 시간을 12시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일부 직원 사이에선 회사 상황이 나빠지는 데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거래소 관계자는 “교육환경과 편의시설 낙후로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면서 지역 사회가 위기에 봉착한 측면이 있다”면서 “부산에 세계적 수준의 교육 인프라를 조성해 국내외 우수 학생을 유치하고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금융자사고 설립 취지를 언급하며 추진 중단은 없을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다른 자사고처럼 의대 입시 학교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거래소 관계자는 “국내외 주요 거래소, 금융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금융 특화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이를 통해 글로벌 금융 인재를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부산 자사고 설립 부지선정위원회는 지난 6월 부산 남구 용호동 부지를 우선협상대상 부지로 선정했고, 현재 거래소는 부산시와 부지 면적, 가격 등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거래소는 2029년 초 개교를 목표로, 내년 초 학교법인 설립을 거쳐 내년 하반기 착공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자사고 설립·운영 비용은 거래소와 BNK금융그룹이 공동 부담하기로 협약을 맺었지만 분담 비율은 정해지지 않았다. 업계에선 비용이 1000억 원은 넘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