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2025-09-24 09:00:00
“35년 만에 ‘유배’당한 그림(판화)이 부활해서 돌아온 거잖아요. (홍성담) 작가 자신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건데, 이렇게 모아서 한꺼번에, 한두 편도 아니고 세트로 왔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한국해양대 김태만 교수)
“12·3 비상계엄 선포·해제 이후 오히려 대한민국이 안전하다는 신뢰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그 전만 해도 한국 상황이 굉장히 위태로워 보였나 봐요. 이제는 확신이 생겨서 이 그림을 독일이 한국에 돌려보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홍리김오월평화문화재단 이명숙 이사)
23일 오후 4시 부산 중구 가톨릭센터 대청갤러리. 민중미술가 홍성담(70) 작가의 ‘독일 유배 작품 봉인 해제 행사’가 진행됐다. 송기인·박명제 신부 등 가톨릭 관계자, 부산·울산·광주 예술인, 오재환 부산문화재단 대표, 장희창 독문학자 등 기관·단체·후원자 등 30여 명은 가슴 뭉클한 순간을 숨죽여 지켜봤다. 작품 한 점, 한 점이 상자에서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며 탄성을 질렀다.
1976~1989년 제작된 작품들은 3개의 나무 상자로 나눠서 지난 1일 경기도 안산의 홍 작가 작업실에 도착했으며(부산일보 9월 1일 자 21면 보도), 이번 전시를 위해 개봉하지 않고 부산으로 옮겨왔다. “지구 반대편을 떠돌다가 35년 만에 귀환한 작품이 어머니의 품 같은 가톨릭센터에 안기니 감개무량합니다. 독일의 그분들한테는 항상 빚진 것 같았는데, 저게 딱 와 버리니까 이제 그 부담에서 해방되는 것 같습니다.”(홍석담 작가)
그런데 첫 공개 장소가 광주(‘오월 판화 연작’ 첫 공개)나 전남 신안(홍 작가 미술관 건립 중), 안산(작업실)이 아닌 부산이 되었을까. 홍 작가는 “전시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며 “부산의 신용철(전 민주공원 학예실장) 큐레이터가 아카이브 차원에라도 전시해야 한다고 설득해서 응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홍 작가는 부산과의 각별한 인연도 소개했다. “‘오월 판화 연작’ 전시가 광주 이외 지역에선 1989년 부산에서 가장 먼저 가톨릭센터에서 개최됐고요. 제가 직접 편집한 사진집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관련 사진전과 여러 사람과 같이 편집한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Ⅱ’ 비디오 상영회를 연 곳이기도 하며, 그 전시 영향은 6월 항쟁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신 큐레이터도 “이번 전시는 홍 작가의 판화 초기작과 미공개 작품을 순회전시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1980년 오월 이후 홍 작가 석방을 위해 노력한 많은 이를 기억하고, 종교와 사회, 종교와 예술의 동행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상자를 놓고 전시회를 시작하는 건 처음이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송기인 신부도 “세상은 한 방향으로만 가면 안 되고, 저항해야 발전하는 데 그런 역할을 하신 분이 홍성담 작가라고 생각한다”며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덕분이어서 우리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봉인 해제가 시작됐다. 정면 기획자가 전동 드릴로 열세 개의 못을 다 뽑자 홍 작가의 ‘북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두 번째, 세 번째 상자 속 작품은 보관 상태가 더 좋았다. 유리 액자 상태의 것들이 대부분이고, 두루마리 통에 작품만 보내온 것도 있었다. ‘대동세상’ ‘밥’ 등 오월 판화 작품이 주를 이뤘으나, 미공개 작품도 제법 눈에 띄었다. 참석자들은 “확실히 젊은 시절 작품이어선지 그림에 에너지가 넘친다”고 평가했다.
작품에 써 놓은 제목은 홍 작가 자필이 아닌데도 글씨체가 많이 닮았다고 했다. 홍 작가는 “내가 쓴 것보다 훨씬 더 또박또박 잘 썼네요!”라고 말해 한바탕 웃었다. 당시 수감 중인 홍 작가를 대신해 광주 시각매체연구회 후배들이 최대한 닮게 쓴 거였다.
독일로 판화 작품을 보내는 방법도 순탄치 않았다는 게 홍 작가의 전언이다. “여러 루트로 독일에 간 것 같습니다. 그중 하나는 신부님과 수녀님을 통한 것인데, 고무줄 팬티 안에 그림을 돌돌 말아 넣고 독일 교포 집에 도착한 뒤 꺼내서 물을 뿌리고 약한 불로 다려서 교회 같은 곳에서 전시하고, 광주를 위한 미사도 드리고 했다고 합니다. 광주항쟁을 알리기 위해서죠.”
이날 홍 작가가 직접 확인한 작품은 액자 상태의 35점과 개별 작품 6점 등 총 41점이다. 또한 두 번째 나무 상자를 열던 중에는 당시 전시회 때 만든 자료집이 달려 나왔다. 총 3권이다. 실제 작품은 안 보이고, 자료집에만 실린 경우도 있었다.
“당시 유럽의회는 ‘홍성담 석방’ 건의문을 처음으로 의결했습니다. 이러한 독일 행동은 국제앰네스티 본부가 있는 영국 런던으로 옮겨갔고, 저를 세계 3대 양심수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가 열리는데, 때마침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그곳 콘서트홀에 공연하러 왔다가 제 판화 2점을 사 가기도 했답니다.”
상자를 직접 개봉하고 작품을 일일이 확인하던 홍 작가는 “이 판화들은 원본이 저한테도 없어요. 안기부가 압수수색 하면서 다 가져갔어요.” “이 판화는 공식 발표를 안 한 건데, 여기서 그게 나오네요.” “이 탈춤 판화는 지금 제가 봐도 정말 잘 그렸네요.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데….” 등 혼잣말처럼 생각을 내뱉으면서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듯했다.
가톨릭센터 관장을 맡고 있는 박명제 부산가톨릭평화방송 사장은 “홍 작가는 판화라는 작품을 통해서 1980년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을 그야말로 용기 있게 그려내고, 그것을 전시하며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중대한 역할을 해 민주화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을 열었다”며 “이 전시회가 다시 한번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일깨우는 좋은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천득염 홍리김오월평화문화재단 이사장은 “광주에서 챙겨야 할 일을 부산에 계신 분들이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봉인 해제된 작품은 부산 전시를 주도하는 신용철 큐레이터가 전시감독을 맡아서 27일부터 10월 12일까지 ‘다시 돌아온 편지-홍성담 독일 유배 작품 35년 귀환 기념 전시’라는 제목으로 부산 가톨릭센터 대청갤러리에서 일반 공개된다. 이어 울산, 광주 등으로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대구와 전주 순회전시는 협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