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키토리·타코·쌀국수의 만남, 묘하게 어울리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5-10-24 09:00:00

부산의 새로운 미식 모임으로 자리매김한 ‘파도’의 네 번째 행사 소식이 전해졌다. 20일 ‘야키토리 해공’에서 타코 전문 음식점 ‘타코들며 쎄쎄쎄’, 태국식 쌀국수집 ‘남타이 누들’의 협업으로 열린다는 것이었다. 일본·멕시코·태국을 대표하는 전통 음식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런 조합은 들어본 적이 없어 대체 어떤 식의 조화를 이뤄낼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파도’ 모임이 열리기 전에 세 곳을 미리 방문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음식으로 하는 세계여행, 생각만 해도 기분이 설렜다.


■ 야키토리집에서 발견한 토종닭 매력

조용한 민락동 주택가에서 심상찮은 냄새가 났다. 그 냄새에 홀려 ‘야키토리 해공’에 들어서는 순간 분명 처음인데, 처음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치마키를 머리에 두른 요리사의 숯불 앞 부채질, 불 조절을 위한 사케 뿌리기 퍼포먼스까지. 서면 굴다리 근처에서 ‘소설담’이란 이름으로 야키토리집을 5년간 운영한 김승현 대표였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토종닭 야키토리집’이다. 말해놓고 보니 모순 어법 아닌가. 야키토리는 이름부터가 일식 요리인데, 굳이 재료를 토종닭으로 쓰는 이유가 뭘까. 소설담 시절 육계(肉鷄)를 내다 어쩌다 토종닭으로 한번 해 봤더니 단골들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김 대표는 그게 깨달음으로 다가와 전국의 농장을 돌아다니며 닭에 관한 공부를 했다.


‘야키토리 해공’ 김승현 대표. ‘야키토리 해공’ 김승현 대표.

토종닭은 질기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여름철 계곡에서 파는 타이어처럼 질겼던 토종닭은 폐계일 가능성이 높다. 노화로 더이상 알을 못 낳게 된 닭. 또는 늙어서 고자가 된 수탉이란 이야기다. 모두가 즐기는 치킨을 비롯해 우리가 먹는 닭은 거의 육계다. 김 대표는 “육계를 발골해 보면 살이 하얗다. 하지만 토종닭은 다리살만 발라도 벌겋다. 토종닭의 육질은 단단하고 씹다 보면 구수한 맛이 난다”라고 말한다.

 육계와 토종닭은 품종도 다르고 사육 기간에서도 차이가 난다. 육계로 태어나면 한 달 만에 생을 마감하니 제대로 맛이 들 시간이 없다. 토종닭은 그보다 사육 기간이 몇 배나 되니 사룟값도 그만큼 많이 들어가 가격도 비쌀 수밖에 없다. “이 가격이면 00치킨이 몇 마리인데, 차라리 한우를 먹으러 가지….” 해공에 따라왔다 계산서를 보고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우만큼이나 토종닭의 몸값도 인정받아야 하지 않을까.


꼼장어 꼬치구이. 꼼장어 꼬치구이.

‘해공’은 일본 스타일을 내세우진 않지만, 일본에서 영향받은 사실은 인정한다. 일본에서 간은 ‘구마모토, 날개는 나가사키’라는 식으로 부위별로 세분화해 유통한다. 심지어 우리는 불법인 닭사시미를 즐길 정도다. 해공의 시그니처 메뉴인 꼼장어 꼬치구이도 짚불에 굽는 ‘와라야키’ 방식을 응용했다. 꼼장어 꼬치구이는 향이 공간을 지배할 정도로 강렬하다. 이렇게 탱글탱글한 식감의 꼼장어는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했다. 닭고기 꼬치에 물릴 무렵 나타난 꼼장어는 싱싱한 활력을 주고 갔다. 무릎 연골 꼬치의 오도독한 식감도 다시 생각난다.

 해공은 ‘야키토리 비스트로’를 내세울 정도로 와인과의 매칭에 진심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닭고기를 많이 먹는데, 대개 와인과 함께 즐기는 방식을 보고 나서 방향을 정했다. 대기업에서 잘나가던 회사원이었던 김 대표는 “불 앞에서 얘기하는 게 재미있어 야키토리에 빠졌다”라고 고백했다. 덕분에 해공은 2024년부터 미쉐린 ‘셀렉티드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불 앞에서 토종닭의 진한 매력에 빠져 봐도 좋겠다.


■ 서민 음식 타코, 부산에서 업그레이드


‘타코들며쎄쎄쎄’ 김지현 대표. ‘타코들며쎄쎄쎄’ 김지현 대표.

‘타코들며 쎄쎄쎄’에 처음 간다면 찾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남천동 인디고서원과 붙어 있는 사설 주차장으로 먼저 들어간 뒤 가정집 같은 주택의 2층까지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멕시코로 가장 빠르게 통하는 비밀 통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멕시코의 전통 음식 타코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 각국에서 다양한 변형이 나타나고 있다.

 타코는 간단히 말해 옥수수나 밀로 만든 토르티야에 고기, 채소, 소스 등을 넣어 접어 먹는 음식이다. 모양으로 볼 때 만두는 속을 감싸 완전히 봉합한다면, 타코는 반쯤 싸거나 재료를 그냥 올려놓고 먹는다는 차이가 있다. 타코의 최고 장점은 이처럼 자유롭고 다양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포용성이다.

 ‘쎄쎄쎄’의 김지현 대표는 ‘시간을 저장하는 사진사’라는 네이버 블로그에 ‘울이삐’라는 애칭으로 지금까지 20년 넘게 꾸준하게 지역 맛집을 소개하고 있다. 오래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자 취미 삼아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던 직장인에서 자영업자로 변신한 것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메뉴로 찾은 게 타코였다. 팝업스토어 형태로 몇 차례 필드 테스트를 신중하게 거친 결과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엔 맛집 블로거 시절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메뉴 개발부터 홍보까지 혼자서 다 하는 생활도 4년째 되니 모든 게 나아지고 있단다.


타코의 최고 장점은 포용성이다. 타코의 최고 장점은 포용성이다.

쎄쎄쎄 타코에서는 고기의 잡내가 나지 않는다는 평이 많다. 사실 타코는 멕시코에서 고급 음식이 아니다. 소의 창자, 혀, 뇌, 눈 등 부위에 따라 타코 이름이 다를 정도로 저렴한 부산물을 주로 사용하는 길거리 음식이다. 쎄쎄쎄에서는 신선한 고기를 삼겹살처럼 즉석에서 구워서 멕시코 향신료를 뿌려 내니 맛이 다르다. 탄수화물은 적고, 고기와 채소가 많아 2~3개를 먹어도 소화가 잘된다. 전통적인 소, 돼지, 양고기 타코 외에도 통새우와 훈제 연어 같은 독창적인 메뉴도 선보이고 있다.

 토르티야에 올려 살사 소스와 사워크림에 버무린 ‘훈제 연어 타코’는 훈제 연어를 먹는 세상에서 가장 간편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포용성에 대한 배려로 나온 메뉴가 ‘비건 타코’다. 고기 빠진 타코는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바꾸면 타코는 원래 채소가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라 채식으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직은 비건 타코를 찾는 사람의 80%는 외국인이다. 다양성과 포용성의 열린 세상을 꿈꾸며 타코를 한입 크게 베어 문다.


■ 남천동에서 만나는 태국식 쌀국수

‘남타이 누들’ 김태형 대표. ‘남타이 누들’ 김태형 대표.

‘남타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태국의 남쪽 지방을 떠올렸다. 그것보다는 남천동의 태국식 쌀국수 전문점이라는 의미였다. 남천동에는 저렴하면서도 깊은 맛으로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작은 가게 ‘남타이 누들’이 자리 잡고 있다. 부산정보관광고 호텔조리과를 졸업한 20대 청년 김태형 씨가 오너 셰프다. ‘꾸어이띠어우’라고 불리는 태국식 쌀국수는 중국·인도·유럽의 다양한 문화가 섞인 음식이다. 베트남 쌀국수와 비교하면 국물이 진하고, 돼지·소·닭·생선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이곳에 와서 쌀국수만 먹기에는 뭔가 섭섭하다면 돼지등뼈를 올려 ‘고기 폭탄’이란 별명을 가진 등뼈 쌀국수가 제격이다. 등뼈를 들고 갈비처럼 뜯다 쌀국수를 먹으면 일석이조 느낌의 의기양양함이 생긴다. 지난 여름철에는 신메뉴 냉쌀국수가 인기였다. 김 셰프는 “쌀국수를 한 번 맛보면 거의 단골이 된다. 등뼈 쌀국수의 반응도 서서히 올라오고 있고, 인터넷에 우리 집이 '고소한 통새우 볶음밥의 매력'이라고 소개되면서 볶음밥을 찾는 사람도 많다”라고 말한다. 젊은 셰프의 도전과 고민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통뼈 쌀국수. 통뼈 쌀국수.

20일 ‘잔향’이란 주제로 ‘파도’ 네 번째 모임이 열리는 ‘야키토리 해공’을 찾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야키토리와 타코, 쌀국수의 조합은 신기하게도 궁합이 잘맞았다. 야키토리 타코에는 밀로 만든 토르티야 위에 숯불에 구운 닭다리살 꼬치가 올라갔다. 미쉐린 셰프의 야키토리가 토르티야 위에 올려진 타코는 모르긴 해도 세계 최초가 아닐까 싶다. 파도 행사를 이끌어온 소공간의 박기섭 셰프도 이날 참가해 대지 위의 새벽을 표현했다는 ‘토종닭 북채 찜’을 선보였다. 닭 다리로만 알았는데 북채(drumstick)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이날 처음 알았다. 야키토리를 먹다 중간에 태국식 샐러드 쏨땀이 들어가니 개운하게 씻어줘서 좋았다. 부위별 야키토리를 먹다 태국식 쌀국수로 마무리를 하니 비로소 코스가 완성된 느낌이 들었다. 남타이 누들의 김태형 셰프는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음식과 서비스를 살펴보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나이로 보면 주방 막내쯤 되는 저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조언도 해 주신 선배 셰프님들에게 너무 고맙다”라고 말했다. ‘파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닭다리 살을 올린 야키토리 타코. 닭다리 살을 올린 야키토리 타코.

소공간 박기섭 셰프(왼쪽)와 남타이 누들의 김태형 대표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소공간 박기섭 셰프(왼쪽)와 남타이 누들의 김태형 대표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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