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돕겠다더니…" 오락가락 정책에 잠 못 이루는 주민들

준공 43년차 창원시 봉암연립주택
안전등급 E등급에 붕괴 위험 속 거주
폐자재 악취·철근 속살·천장 무너져
창원시 "공단 활용해 민간투자 돕겠다"
시장 바뀌자 이주 정책 그대로 백지화
"예산 부담·특혜 시비... 대안 찾는 중"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2025-05-27 08:00:00

20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연립주택 건물 전경. 강대한 기자 20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연립주택 건물 전경. 강대한 기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에서 살라는 건지, 죽으란 건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봉암연립주택은 1982년 준공됐다.

40년도 넘은 외벽을 가리키며 관리소장 하정진(74) 씨는 부서진 외벽을 가리키며 “오늘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한숨을 뱉었다.

취재진이 입하(立夏)를 지나 햇살이 부쩍 뜨거워진 봉암연립주택을 찾았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단지 곳곳에서는 폐자재·폐가구 등이 쌓여 악취를 풍겼다. 인적은 느껴지지 않고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알림’과 ‘재난위험시설 지정 안내표지판’이 취재진 차량을 맞았다.

실제 건물의 노후는 더 심각했다. 공동현관 입구는 지반 침하로 삐뚤어져 문을 여닫기 힘들었다. 일부 세대에서 천장은 콘크리트가 떨어져 철근 속살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이미 건물 구조가 틀어진 탓인지 내부 계단은 이곳저곳 갈라져 있었고, 뒤틀린 현관문을 20cm 정도의 돌멩이를 괴어 놓은 세대도 있었다.

20일 찾은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연립주택 내 한 집안에 천장이 무너진 모습. 강대한 기자 20일 찾은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연립주택 내 한 집안에 천장이 무너진 모습. 강대한 기자

독거노인이 거주 중인 한 세대 안으로 들어서자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곰팡이내였다. 방마다 벽지가 늘어져 벽에는 검은 곰팡이가 그득했다.

인근 세대는 안방 천장이 무너지면서 누수가 생겨 바닥에 방수천을 깔아 놓기도 했다. 지난해 입주민이 이주했다는 이 세대 안에는 가재도구가 가득했다. 붕괴 위험에 누수까지 겹치자 서둘러 몸만 옮긴 것이다.

봉암연립주택 주민들은 당장 여름철 모기 등 벌레 걱정과 장마철 누수 우려에 표정이 어두웠다.

반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는 최효선(80) 씨는 “재작년 이웃(당시 81세) 언니가 자고 있었는데 옆으로 떨어진 콘크리트를 보고 너무 놀라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며 “1~2년 새 멀쩡하던 이웃 10여 명이 세상을 등졌다”고 전했다.

사실상 생존권까지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봉암연립주택에서 주민들이 떠나지 못하는 건 창원시의 책임이 크다.

민선 7기 창원시정이 들어서며 봉암연립주택에 민간투자 사업 방향을 제시하며 묘책을 내놓는데 이 것만 믿고 있다 민선 8기 시장이 바뀌자 창원시의 제안이 백지수표가 된 탓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주민 시름은 늘고 건물은 갈수록 황폐해져 갔다.

20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연립주택 건물 전경. 강대한 기자 20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연립주택 건물 전경. 강대한 기자

26일 창원시에 따르면 봉암연립주택은 봉암동 일대 1만 61㎡에 3층짜리 건물 8개 동으로 지어졌다. 총 129세대 중 현재 63세대, 98명의 주민이 거주 중이다. 일찌감치 떠날 주민은 다 떠나고 고령의 노인들만 남았다.

봉암연립주택은 이미 20여 년 전 재건축 추진을 위해 안전점검을 실시해 ‘E등급’을 받은 바 있다. E등급은 주요 결함이 있다고 판단돼 즉시 사용을 중지해야 하는 수준이다.

당시에는 주민 이주에 대한 지원 근거가 없었다. 주민들은 E등급 판정 이후 20년 넘게 위험한 주거 환경에서 지내온 셈이다.

그 사이 자체적으로 재건축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사업성을 따지는 사이 세월이 흘러 조합장이 사망하는 등 봉암연립주택은 자체 동력을 상실했다.

그러다 창원시가 봉암연립주택이 사방에 공단을 끼고 있는 점을 착안해 이주안을 내놨다.

2020년 3월 완충저류시설이 민간투자가 가능하도록 관련법이 개정된 걸 활용한 것이다. 주택 부지에 민간 자본을 들여 공단에 필요한 시설을 개발하면 이 재원으로 주민 이주를 돕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방선거 이후 창원 시장이 바뀌자 이주 사업 추진이 돌연 중단됐다.

창원시는 자체 감사에 착수해 △기존 정책 미부합 △최초 사업 제안자 선정 공정성 훼손 △예산 절감 기회 누락 등을 이유로 사업 자체를 백지화했다. 주민들은 “전임 시장이 우리 희망을 앗아갔다”고 입을 모았다.

20일 찾은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연립주택 내 한 집안에 천장이 무너진 모습. 강대한 기자 20일 찾은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연립주택 내 한 집안에 천장이 무너진 모습. 강대한 기자

오락가락하는 창원시 방침에 붕괴 위험이 계속되자 창원시의회가 나서서 봉암연립주택의 공공개발 추진을 제안한 상태다. 적합한 공공시설이 있는지 창원시정연구원에서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주택 부지에 공공시설을 건립하고 토지 보상시를 지급해 이주를 지원하는 게 골자다. 용역 결과는 다음 달 나올 예정이다. 여기에 긴급안전점검 용역도 올 8월까지 추진한다.

그러나 여전히 창원시는 부정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보상비·개발비가 각각 수백억 원으로 추정되고 있어 예산 부담이 크다는 이유다. 자체 안전관리 부실로 생긴 민간 주택 문제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경우 특혜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창원시 관계자는 “5~6개 관련 부서가 모여 매달 2~3번씩 회의를 하면서 적절한 대안을 찾고 있다”며 “재난에 준해 이주비를 지원할 방법이나 사회보장제도 활용 방안 등 폭넓게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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