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 2025-05-26 15:09:39
부산 사상구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A 씨는 올해 3월부터 불안감이 커졌다. ADHD(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 치료를 위해 다니고 있는 병원에서 치료제 ‘콘서타’의 공급이 부족해 당분간 처방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사정이 나아져 콘서타는 1주일 단위로 처방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마저도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 A 씨는 “약을 먹지 않은 날엔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낀 느낌이 들어 업무 처리를 위해 간단한 계획을 세우는 일도 어렵다”며 “1주일마다 병원에 가야 하는 것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최근 부산 일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콘서타 등 ADHD 치료제 품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환자와 처방이 급증한 데다, 일부 지역에선 청소년들 사이에서 ‘집중 잘 되는 약’으로 오용되는 현상까지 나타나 빚어진 결과로 보인다. 치료제를 제때 못 구한 환자들은 집중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겪는 등 불안과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26일 지역 의료계에 따르면 올해 3월부터 현재까지 부산 지역 일선 정신건강의학과에 콘서타와 메디키넷 등 ADHD 치료제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있다. 재고가 확보된 병원에서도 함량에 따라 1주일 단위로만 처방이 이뤄지는 등 제한적이다.
A 씨 사례처럼 치료제를 못 구한 환자들은 집중력 저하 등으로 학업과 업무에 지장을 겪으면서 정부에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달 3일 국회전자청원 웹사이트에는 ‘ADHD 치료제 품절 사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고, 2만 2000여 명이 서명하기도 했다.
ADHD 치료제 품귀의 직접적인 원인은 공급에 비해 수요가 급증해서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비대면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가 늘고, 이에 따라 시간 관리, 계획 수립 등 자기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ADHD 진단이 늘었다.
특히 청소년과 20~30대 성인들의 ADHD 진단 사례가 큰 폭으로 늘면서 치료제 품귀로 인한 피해도 이들에게 집중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10대 ADHD 환자 수는 2020년 4만 6335명에서 지난해 10만 8210명으로 4년 새 배 넘게 늘었다. 20~30대 환자 수도 2022년 8만 6791명에서 2023년 11만 6074명으로 30% 넘게 늘었다.
게다가 ADHD 치료제가 ‘집중 잘 되는 약’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일부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실제 환자가 아닌데도 성적 향상 등을 목적으로 약을 구하는 경우도 있어 이런 품귀 현상은 심화한다. 특히 ADHD 치료제를 처방받는 청소년들이 서울과 경기, 그중에서도 소위 입시 경쟁이 치열한 ‘학군지’에 집중되는 현상도 보인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ADHD 치료제를 처방받은 10대 청소년의 수가 많은 상위 지자체 3곳은 서울 강남구(5079명), 경기 성남시 분당구(3914명), 서울 송파구(3747명)로 나타났다. 부산 부산진구(2317명)는 대구 수성구(2876명), 서울 서초구(2739명)에 이어 여섯 번째였다.
해운대구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그나마 국내에 들어온 치료제 물량마저 대부분 수도권 학군지 중심으로 먼저 유통되면서 부산 등 지방에 돌아오는 치료제가 줄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ADHD 치료제 오남용이 공급 부족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의존성 심화로 인한 불법 약물 사용 등 개인과 사회에게도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인제대 부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제욱 교수는 “콘서타의 주요 제조국인 미국에서는 ADHD 치료제 오남용을 예방하기 위해 매년 정해진 양만 생산하도록 정부가 제한하고 있다”며 “입시 등 지나친 경쟁에 노출된 청소년과 청년들이 치료제를 간편한 해결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환자가 아닌데 복용하면 아무런 효과는 없고 초조함, 수면 장애 등 부작용의 위험만 키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