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더로 환전도 송금도 뚝딱… 한국도 이제 ‘달러 코인’이 일상

거버스토리: 실생활 파고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달러 연동 안정성 바탕, ATM서 손쉽게 원화 환전·카드 충전
서울 강남 중심 비공식 환전소 성행, 채팅방서 개인 직거래도
제도 공백에 원화 위상 위협… 대선 후보 ‘원화 코인’ 공약 주목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2025-05-26 18:21:20

부산 해운대구 홈플러스 센텀시티점에 설치된 가상화폐ATM기. 이재찬 기자 chan@ 부산 해운대구 홈플러스 센텀시티점에 설치된 가상화폐ATM기. 이재찬 기자 chan@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호텔에서 슬리퍼를 신고 나와 동네 마트 ATM기에서 곧바로 가상화폐 계좌의 현금을 뽑아 쓸 수 있다. 부산 사하구에 사무실을 둔 오징어 수입업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거래업체에 결제 대금을 테더로 보내는 일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됐다.

가상화폐 가운데 ‘테더(USDT)’와 ‘써클(USDC)’ 같은 스테이블코인이 일상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쉽게 말해 1달러가 1테더라고 이해하면 돼 ‘디지털 달러’로 통용된다. 전 세계 어디든 곧바로 송금이 가능하고 수수료는 0원에 가깝고 환전 필요없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최근엔 일상에서 물건을 사거나 돈을 뽑는 데에도 빠르게 이들 가상화폐가 쓰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이 새로운 통화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한국은 그 대열 합류에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테더로 뽑는 원화? 이제는 현실

26일 부산 해운대구 홈플러스 센텀시티점 1층. 매장 안에 설치된 노란색 ATM기는 얼핏 외화 환전기처럼 보이지만, 스테이블코인인 테더를 포함한 가상화폐를 원화로 환전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테더 등 암호화폐를 실시간 시세에 따라 현금으로 바꾸거나 선불카드에 충전할 수 있다. 단, 외국인만 이용 가능하다.

이 기기는 여권 스캔과 안면 인식으로 본인 인증을 마친 뒤, 화면에 표시된 제조사 다원KS의 전용 콜드월렛 주소(QR코드)를 스캔해 가상화폐를 전송하면 작동한다. 이용자는 자신이 보유한 개인 지갑에서 해당 주소로 테더 등을 보내고, 그에 상응하는 원화를 현금으로 수령하거나 카드에 충전한다. 하루 최대 2000달러까지 환전할 수 있고, 외화 환전과 카드 발급 기능도 함께 제공된다.

다원KS는 이 ATM기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운영 중이며, 지난 3월 말 부산에 첫 기기를 설치했다. 현재 서울 6곳, 부산 1곳 등 7대가 가동되고 있다. 부산에서는 설치 두 달간 실적이 3건에 그쳤지만, 엘시티 등 관광지를 중심으로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회사는 이용자가 전송한 암호화폐를 콜드월렛에 보관하고 있으며, 제도적 한계로 매도할 수는 없다고 한다. 다원KS 이종명 대표는 “영리 법인이 가상자산을 자산으로 인정받고 거래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돼야 서비스도 안정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 못 따라가는 제도

이 ATM기에서 특히 테더가 주목받는 이유는 시세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과는 달리 달러에 연동된 안정성을 바탕으로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국제 송금망인 스위프트보다 빠르고 간편하게 자금을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테더가 무역 현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해외 유학생이나 교민 간 송금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도 있다.

수취한 테더는 환전상이나 사채 시장을 통해 원화로 바꿀 수 있고 카카오톡·텔레그램 등 오픈채팅방을 통해 개인끼리 직거래할 수도 있다. 실제 기자가 오픈채팅방에 접속해 보니 거래소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테더를 사고판다는 광고가 수시로 게시되고 있었다. 대부분 가상자산사업자로 등록되지 않은 상태로 운영돼 자금세탁 우려와 함께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서울 강남 일대에서는 고액 중심의 비공식 테더 환전소들도 성행 중이다. 테더를 환전소 측 지갑으로 송금하면, 수수료를 뗀 금액을 현금으로 즉시 지급받는 구조다. 반면 서울과 달리 부산에서는 아직 테더를 취급하는 환전상이 드물다. 부산역 인근의 한 환전상은 “가끔씩 몇몇 외국인 손님이 테더로 환전을 문의해오긴 한다”면서도 “코인을 잘 몰라서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구원투수?

지난 20일 기준 실물연계자산(RWA) 데이터 플랫폼 RWA.xyz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총 공급량은 2325억 달러(322조 원)를 넘어섰다. 이 가운데 테더가 거의 1500억 달러(208조 원)를 차지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미국 써클사가 발행하는 USDC는 약 578억 달러(80조 2억 원)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유럽연합(EU)은 ‘가상자산시장법’(MiCA) 시행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발행 요건과 환급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써클은 프랑스에 법인을 설립해 규제에 대응한 반면 테더는 이를 우회하기 위해 사업지를 엘살바도르로 옮겼고, EU 역내 거래소에서는 상장폐지됐다. EU의 이 같은 대응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견제해 통화주권을 지키려는 것이다.

가상자산 컨설팅 업체 원더프레임 김동환 대표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테더를 사용하게 되면 경제적으로는 미국 시스템 안에 편입되는 셈이다”며 “이는 원화 사용 수요와 위상이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6·3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뒤따르고 있다. 테더나 써클의 장점은 익명성에 기반하지만, 제도권에서 자금세탁 등의 우려로 이를 채택할 리 없다는 것이다.

리얼체크 비트코인뱅크 이기용 대표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기명형으로 만들 경우, 사실상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하면서 “반대로 익명성이 사라지면 스테이블코인이 가진 자유로운 거래의 매력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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