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공간을 바꾸는 마법사처럼…

부산 설치 작가 정혜련·조은필
올해 국제전서 돋보이는 활약
정 작가, 베니스 비엔날레 동참
조 작가, 치바현 예술 축제 참여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2024-07-03 10:35:03


이탈리아 나폴리 인터액션 2024에 설치된 정혜련 작가의 작품 전경. 정혜련 제공 이탈리아 나폴리 인터액션 2024에 설치된 정혜련 작가의 작품 전경. 정혜련 제공

미술의 한 장르인 설치미술은 하나의 작품으로 공간 분위기를 확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작품이 공간 자체에 합류해 직접적으로 관람객과 상호작용하고,시간의 변화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관람자는 시각적, 청각적, 공감각적인 자극을 통해 공간의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매력 넘치는 장르이지만, 정작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려면 고단한 노동이 요구된다. 설치 작업을 ‘노가다’에 빗대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메시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어떻게 작품으로 구현하고 어떤 공간에 설치할지에 대한 내용까지, 고민은 이어진다. 작품의 제작뿐만 아니라 이동과 설치에도 품이 많이 들어간다. 아트페어 중심으로 미술 시장이 재편되며 규모가 큰 설치 작품은 거래가 쉽지 않다는 점도 현실적인 제약이다.

이 모든 걸 버티며 한길을 고집한 부산의 설치작가들이 최근 조명받고 있다. 정혜련 작가는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와 나폴리 인터액션 2024(비엔날레) 등 2개의 대형 미술 행사에서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줬고, 일본 치바현 탄생 150주년 기념 아트 페스티벌에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조은필 작가가 참여했다. 두 작가를 함께 만나 국제 전시 이야기부터 지역에서 설치 작가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와 일본 치바현 150주년 기념 아트페스티벌에 참가한 정혜련(오른쪽) 조은필 작가. 김효정 기자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와 일본 치바현 150주년 기념 아트페스티벌에 참가한 정혜련(오른쪽) 조은필 작가. 김효정 기자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와 일본 치바현 150주년 기념 아트페스티벌에 참가한 정혜련(오른쪽) 조은필 작가. 김효정 기자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와 일본 치바현 150주년 기념 아트페스티벌에 참가한 정혜련(오른쪽) 조은필 작가. 김효정 기자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와 일본 치바현 150주년 기념 아트페스티벌에 참가한 정혜련(오른쪽) 조은필 작가. 김효정 기자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와 일본 치바현 150주년 기념 아트페스티벌에 참가한 정혜련(오른쪽) 조은필 작가. 김효정 기자

“서로를 너무 잘 알죠. 20대 초반 부산대 조소과 선후배로 만났으니 벌써 20년이 휠씬 지났네요. 같은 분야라서 경쟁자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는데, 사실 우린 각자의 작업만 생각하니까요. 외국에서 먼저 전시를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배운 노하우를 조은필 작가에게 전달하기도 했죠. 물론 저도 조 작가에게 배우는 점도 있죠. 경쟁보다는 서로 응원하는 관계가 맞겠죠. 힘든 현장에서 버티다보니 전우애 같은 것도 있고.”(정혜련)

대담 자리가 어색하냐는 물음에 두 사람 모두 손사래를 친다. 워낙 오래된 관계라서 오히려 인터뷰가 사적인 수다로 변질될까 싶어 긴장하고 있단다. 먼저 두 작가에게 국제전에 참가한 소감부터 물었다.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행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메커니즘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 큰 수확인 것 같아요. 그들이 아시아 작가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소득이죠. 앞으로 작업할 때 좋은 동력이 될 것 같아요.” (정혜련)

“제가 참여한 페스티벌은 치바현 5개의 시에서 작가가 각자 맡은 공간을 전시하는 형태죠. 그러다보니 조용한 시골의 미술관에서 오롯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어요. 한국에선 전시뿐만 아니라 신경써야 할 다른 부분들이 있거든요. 도심이 아닌 시골의 미술관까지 전시를 보러 찾아오고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조은필)

정혜련 작가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건물 외벽에 다채로운 발광 소재가 떠다니는 비정형의 드로잉 설치물을 올렸다. 끝없이 순환하며 생명력을 키워나가는 예술에 대한 메시지였다.

베니스비엔날레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나폴리 국제전 감독이 정 작가의 작품에 반해 나폴리 전시까지 이어졌다. 나폴리 전시 작품은 지역 위치값, 수질오염, 날씨 데이타 등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수치의 변화를 시각화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람들이 느끼는 시공간에 대한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조은필 작가는 자신의 상징색인 푸른색 털실과 레이스로 커다란 설치물을 감싸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일본 치바현에 위치한 ‘이치하라’는 댐 건설을 위해 마을을 수장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는 한일 관계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이 같은 관계를 작품 속에 담아 냈다.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에 설치된 정혜련 작가의 작품 전경. 정혜련 제공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에 설치된 정혜련 작가의 작품 전경. 정혜련 제공

일본 치바현 150주년 기념 아트페스티벌에 설치된 조은필 작가의 작품 전경. 조은필 제공 일본 치바현 150주년 기념 아트페스티벌에 설치된 조은필 작가의 작품 전경. 조은필 제공

일본 치바현 150주년 기념 아트페스티벌에 설치된 조은필 작가의 작품 전경. 조은필 제공 일본 치바현 150주년 기념 아트페스티벌에 설치된 조은필 작가의 작품 전경. 조은필 제공

두 작가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이번 국제전을 계기로 또 다른 기회가 생길 것 같다. 두 사람은 줄곧 부산에서 작업했지만, 이제 전국 미술관에서 러브콜을 받는 중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부산대에서 석·박사를 끝낸 후 외국 레지던시 작가로도 여러 번 선정됐다. 여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도 건물 외벽을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를 두고 현장의 어려움이 있었죠. 결국 처음 의도가 아니라 스케치를 바꾸어야 했고 특히 빛을 이용한 작품인데 저녁이면 강제로 소등하느라 작품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커요. 국제 전시 경험이 여러 번 있는데도 여전히 현장은 정말 변수가 많아요.” (정혜련)

“일본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다보니 야외 구조물에 대한 안전이 너무 까다로운 겁니다. 땅을 몇 센치 파야하고 큰 돌은 몇 개 이상은 안된다는 제약이 있더라고요. 그게 힘들었는데 그래도 설치 작업에 대한 협조는 좋았어요.” (조은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제 즉석에서 대안을 내놓을 정도가 됐다. 대화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 묻기 미안한 질문을 꺼냈다. 설치작품은 판매가 어려우니 힘든 점이 많을 것 같다고 말하니 두 작가 모두 정색한다.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자신들 작업은 굉장히 상업적이라는 말도 한다. 전시를 앞두면 작품이 모두 팔려 전시 후 아무 것도 가져올 것이 없는 예상을 자주 한단다.

다행히 요즘엔 설치작품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고 있다. 정혜련 작가는 JHR이라는 ‘부캐’로 소형 미디어 설치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조은필 작가도 자신의 상징인 블루색을 활용한 소품 작업을 하고 있다. 이제 잘 팔릴 수 있는 작품이 나오느냐는 농담에 두 작가는 작업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일뿐 판매를 위한 작품을 만든다는 건 오해라고 정색한다.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와 일본 치바현 150주년 기념 아트페스티벌에 참가한 정혜련(오른쪽) 조은필 작가. 김효정 기자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와 일본 치바현 150주년 기념 아트페스티벌에 참가한 정혜련(오른쪽) 조은필 작가. 김효정 기자

설치 작가에게 부산은 어떤 공간으로 해석될까.

두 작가는 매력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에 공감했다. 다만 야외에 작품을 설치할 때 행정기관의 협조나 이해도가 수도권에 비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부산 작가들이 자생적으로 시작한 바다미술제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두 작가는 부산의 역사성을 담은 공간에서 설치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두 작가가 부산 야외에 펼칠 공간 마법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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