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 2025-02-05 18:21:50
대법원이 1000억 원을 들여 만든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의 접속이 원활하지 않아 법조계가 혼란을 겪고 있다. 법원이 디지털 전환 사업을 목적으로 해당 사업을 추진했지만, 기본적인 시스템 접속조차 불안정해 변호사가 직접 법원에 서류를 내야 하는 등 불편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은 지난달 31일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을 개통했다. 대법원이 2020년부터 1000억 원을 투입했고, 향후 5년간 유지 보수에도 1000억 원을 들이는 디지털 전환 사업이다. 전자소송 홈페이지와 나홀로소송 홈페이지, 전자민원센터는 전자소송포털 한곳에 모으는 등 흩어진 시스템을 통합했다. 송달증명, 확정증명 등 인터넷으로 발급받을 수 있는 증명 문서도 기존 5종에서 19종으로 확대됐다. 금융인증서로 전자소송포털과 전자공탁서비스도 이용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전자소송포털’에서 송달 문서 확인과 기록 열람 등이 힘든 상황이 엿새째 계속되고 있다. 전자소송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법조인이나 민원인의 불편이 가중된다. 인터넷 등기소를 개편해 새롭게 도입한 ‘미래등기 시스템’도 접속 지연이 발생하면서 혼란이 적지 않다. 일부 이용자는 로그인이 되지 않거나 포털 접속 자체가 불가능했다. 사건 검색이 안 되는 경우도 속출했다.
대법원은 지난 4일 전자소송포털 사이트 공지에서 “전자소송포털 시스템이 현재 제출 및 기록열람 등 업무가 원활하지 않다”며 “사용하시는 데 불편을 드린 점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긴급하게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관할 법원 민원실을 방문하여 접수해달라”고 덧붙였다.
법조계는 사실상 ‘업무 마비’라며 불만을 쏟아낸다. 부산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가 법원에 제출하는 서류나 검색 등이 전반적으로 아주 느리고 에러가 심하다”며 “변호사 사건 중에는 ‘불변 기한’이라고 기한을 꼭 지켜야 하는 사건이 있는데, 이런 사건에는 변호사가 직접 법원으로 가서 서류를 내기도 하는 등 소송에 타격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변호사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고충을 토로하는 글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한 변호사는 “전자소송은 둘째 치고 대법원 ‘나의사건’ 검색도 안 된다”며 “(수리비까지)2000억 이상 썼다는데, 그냥 원래 전자소송 사이트 돌려 내라”고 글을 올렸다.
판사와 법원 직원들의 재판 업무 시스템도 먹통이다. 기존 시스템이 통합되고 디자인 등도 개선됐지만 일부 기능이 작동되지 않고 있다. 한 판사는 “현재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것도 있고, 예전 시스템보다는 업무가 원활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시스템 오류로 법원이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기반 법률 서비스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대법원이 대대적으로 준비한 소송 시스템조차 마비된 상황에서 AI 법률 서비스 도입은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