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청년들 “이제 복수할 때가 왔다”

■ 분노 세대 / 너새니얼 포퍼

온라인 커뮤니티의 2030 남성들
게임스톱 사태·트럼프 재집권 등
금융·정치 뒤흔드는 세력 급부상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2025-02-06 11:09:46

<분노 세대> 표지. <분노 세대> 표지.

주식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2021년 ‘게임스톱 사태’를 기억할 테다. 게임스톱은 미국의 유명 비디오 게임 유통회사다. 당시 기관 투자자들의 공매도로 회사의 주가가 폭락했다. 이에 성난 개인 투자자들이 조직적으로 주식을 매수해 주가를 끌어올렸고, ‘주가 하락’에 베팅했던 공매도 세력들은 되레 막대한 손실을 봤다. ‘개미’가 ‘기관’을 이긴 이 아름다운(?) 사례를 우리는 흔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한다. 그러나 공매도 세력을 물리친 개미들이 과연 선량한 양치기 다윗인 걸까.

미국 블룸버그의 뉴스 편집자 너새니얼 포퍼가 쓴 <분노 세대>는 게임스톱 사태를 통해 현대 젊은이들(당시 공매도 세력에 맞섰던 개미 대부분이 2030 젊은 남성이었다)의 ‘분노’를 설명한다. 이들은 밈과 혐오를 무기로 집단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하고자 했으며, 온라인에서 유대감을 쌓으며 자기 존재를 인정받는 데 몰두했다. 저자는 이들을 (책 제목과 같은) ‘분노 세대’로 정의했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는 수 년 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재선 성공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게임스톱 사태 때 분노한 청년 투자자들이 활동하던 주요 근거지는 ‘레딧’(Reddit)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소모임 게시판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였다. ‘월스트리트베츠’는 원래 사회 주류 담론에서 소외된 2030 젊은 남성들의 도피처였다. 진보적 시민운동과 PC주의(정치적 올바름)가 세를 넓혀감에 따라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 집단의 권리 또한 강화된 데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사회적 입지가 줄어든 자신들의 이익은 그 누구도 대변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자조하기보다 서로를 조롱하고 웃음거리로 삼았으며, 돈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단순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내보였다. 이 커뮤니티는 올해 1월 기준 회원이 18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의 분노를 가장 잘 이용한 것이 트럼프다. 트럼프는 남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만연한 정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또한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책은 원래 진보 성향이었다가 ‘월스트리트베츠’에 서식하며 트럼프 지지자로 바뀐 한 청년의 게시물을 인용한다. “나는 트럼프가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트럼프가 지금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지지하는 것은 기존 정치 체제를 뒤엎은 행위다’라는 메시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그런 식으로 행동할 때마다 오히려 기존의 정치판과 상관 없이 소신껏 행동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은 미국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인물인 트럼프가 재집권할 수 있었던 것을 이러한 분노 세대의 삐뚤어진 욕구 때문으로 설명한다. 이런 혼란이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025년 현재의 한국 상황과도 오버랩된다. 어떤 자는 기존 정치 체제를 뒤엎기 위해 제멋대로 군을 동원하고도 오히려 떳떳하게 고개를 쳐들고, 그자를 지지하는 2030 청년들은 그자의 구속 결정에 분노해 법원을 습격하고 난동을 부린다.

게임스톱 사태라는 특정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면서 나아가 그 이면의 돈과 남성성, 권력, 온라인 문화의 관계 등을 날카롭게 짚은 책. ‘미시’(微視)를 통해 ‘거시’(巨視)를 이야기한다.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책이다. 너새니얼 포퍼 지음/김지연 옮김/웅진지식하우스/472쪽/2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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