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2025-03-30 15:42:55
지난 28일 오후 2시간 20여 분에 걸친 개막 공연은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친 긴장과 몰입으로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시간을 선사했다. 음악은 사뭇 음울하고, 비장했고, 또한 아름다웠다. 2025년 통영국제음악제가 개막했다. 음악제가 시작됐으니, 통영은 바야흐로 봄이다.
진은숙 예술감독은 개막 기자 간담회에서 “산불 등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이어서 축제를 벌이는 것이 맞는지 질문을 많이 했지만, 오랫동안 준비해 왔고 행사를 안 했을 경우 파생될 문제가 있어서 겸허한 마음으로, 준비한 대로 음악제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산불 피해 상황을 고려해 28일부터 30일까지 예정된 통영프린지 2주 차 공연은 연기했다. 그러면서 진 감독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가 불안하고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각자가 잘 견뎌야 하겠지만, 최소한으로 음악제에 와서 음악을 듣는 순간만이라도 그동안 잊고 있던 자신의 깊은 내면세계를 다시 접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음악제 주제 ‘내면으로의 여행’은 이렇게 정해졌다.
개막 공연이 열린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1309석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이날 개막 공연은 통영국제음악제 올해의 상주 연주자 임윤찬과 파비앵 가벨이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 협연으로 진행됐다. 예매 사이트를 열자마자 1분 만에 매진된 그 공연이다. 공연장 로비에는 혹시나 취소 표가 없는지 알아보려는 음악 팬들과 대형 모니터로 실황 영상이라도 보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개막 공연은 통영국제음악제의 모태가 된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서곡’으로 시작됐다. 이어 세계적 신드롬의 주인공 임윤찬이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하고, 2부에서는 TFO가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을 들려줬다.
특히 임윤찬의 연주는 보는 이를 무아지경에 몰아 넣었다. 첫 악장부터 강렬하고 묵직했다. 임윤찬의 몸 움직임은 크지 않았지만, 연주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때로는 서정적으로, 때로는 유장하게 슬픔을 꾹꾹 눌러 담는 듯했다. 2악장은 보다 서정적인 분위기였다. 한층 여유로워진 임윤찬은 자신의 몫인 피아노를 연주하면서도 플루트와 클라리넷 연주자를 응시하는 등으로 오케스트라와 적극 교감했다. 3악장은 경쾌하고 힘 있는 분위기로 전환됐다. 서정적인 멜로디도 오가면서 슬픔을 딛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듯했다. 때로는 한 손을 머리 위로 치올리고, 의자에서 몸을 들썩일 정도로 격정적이었다. 지휘자 가벨도 힘찬 손짓으로, 절정으로 치달았다.
관객들은 환호성과 기립박수를 보냈다. 임윤찬은 관객 호응에 화답해 앙코르곡으로 리스트의 ‘순례의 해’ 두 번째 해 ‘이탈리아’ 중 페트라르카 소네트 104번을 연주했다. 반짝반짝 빛나던 임윤찬이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임윤찬은 30일에 리사이틀도 연다. 작곡가 이하느리의 신작 ‘…라운드 앤드 벨버티-스무드 블렌드…’(…Round and velvety-smooth blend…)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려준다.
진 감독은 “(임윤찬이) 통영에 도착한 뒤 연습할 때 객석에서 몇 시간 동안 혼자서 지켜봤는데 그때도 감동 그 자체였지만, 오늘도 정말 대단했다”면서 “점점 좋아지는 임윤찬이어서 앞으로도 정말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장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도 모습을 드러냈다. 문 전 대통령 부부는 이날 1층 객석에서 개막 공연을 관람했다.
이 외에도 음악제는 올해로 타계 30주년을 맞은 작곡가 윤이상을 기념하는 ‘윤이상을 기리며’ 공연과 탄생 100주년을 맞은 거장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피에르 불레즈의 주요 작품도 준비했다.
29일 ‘윤이상을 기리며’ 음악회는 윤이상의 ‘협주적 단편’과 ‘밤이여 나뉘어라’를 오랜만에 들을 수 있어서 호평이었다. 호소카와 도시오의 ‘드로잉’, 황룽 판의 ‘원인과 결과’(한국 초연), 백병동의 ‘인간이고 싶은 아다지오’ 등 윤이상 제자의 작품도 함께 연주됐다. 진 감독이 예술감독을 겸하고 있는 대만의 웨이우잉 국제음악제의 상주 단체인 웨이우잉 현대음악 앙상블(지휘 수한 양)과 소프라노 쓰윈 정은 기대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피에르 불레즈를 기리며’ 공연은 다음 달 5일 이어진다. 불레즈가 창단한 세계적인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이 불레즈의 ‘삽입절에’(아시아 초연) 등 그의 주요 작품을 들려준다.
상주 작곡가인 한스 아브라함센의 ‘바이올린, 호른, 피아노를 위한 여섯 개의 소품’은 다음 달 3일 아시아에서 처음 연주된다. 연주는 유해리(호른), 일리야 그린골츠(바이올린), 선우예권(피아노)이 맡는다.
이밖에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소프라노 황수미와 조지아 자먼, 테너 마일스 뮈카넨,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 KBS교향악단 등도 무대에 오른다. 음악제는 다음 달 6일 성시연이 지휘하고 TFO가 연주하는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으로 대단원을 이룬다.
통영=김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