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단위로 뉴스·정보가 넘치는 시대입니다. ‘허위 왜곡 콘텐츠’도 횡행합니다. 어지럽고 어렵고 갑갑한 세상. 동양 최고 고전인 ‘주역’으로 한 주를 여는 지혜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주역을 시로 풀어낸 김재형 선생이 한 주의 ‘일용할 통찰’을 제시합니다. [편집자 주]
필자가 사는 전남 곡성군은 인구 3만이 되지 않는 작은 지역 공동체입니다. 흔히 이야기되는 농촌 소멸 지역 중 하나입니다.
인구 소멸은 우리 사회 전체 문제여서 농촌 문제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농촌 사회가 조금 더 먼저 겪는 일이고, 인구가 줄지 않는 서울 인천 세종시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 겪어야 하는 일입니다.
이런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개념이 ‘행복도시’입니다.
어디서나 인구는 줄어들지만 지역이 소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줄어드는 인구 속에서도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면 그런 지역을 소멸 지역이라고 말할 수 없고 오히려 사람이 살기에 적절한 인구 속에서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행복 도시라고 해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말하기에 따라 느낌이 달라집니다.
곡성군은 농촌 소멸 지역이기도 하고 행복도시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이 두 가지 가능성이 공존합니다.
어느 도시에나 있지만 곡성군에도 그림 동호회가 있습니다. ‘생연필’이라는 모임인데 ‘생각하는 그림 동호회’ 의미입니다.
생연필은 우리 지역의 ‘107곡성군립갤러리’에서 전시회를 매년 열었습니다. 올해 5회째입니다. 매년 전시회를 가봤는데, 매번 그림이 좋아집니다.
동호회를 이끄는 서현호 선생은 매년 서울과 광주에서 전시회를 열 정도로 역량 있는 작가입니다. 고향에 돌아온 뒤 개인 연습실을 지역민들에게 작업 공간으로 개방하고 함께 그림 그리는 운동을 해왔습니다.
선생의 그림 지도의 고갱이는 ‘잘못된 그림은 없다’입니다.
그림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이 잘 그리고 싶어 해서 생겨나는 긴장감을 완화하는 게 그의 지도 방법입니다.
이러다 보니 그림 그리는 분들이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아마추어 그림 동호회답게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그리도록 이끌어 갑니다. 그림을 통한 치유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회 작품들도 자기의 생각과 삶이 담겼습니다.
전시회 시작하는 날 작가들이 자기 작품 앞에서 그림을 설명하는 데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들들이 많았습니다.
작품에 담긴 이야기도 다양하고 표현 양식도 다채롭습니다.
107곡성갤러리는 연초에 전시 예약을 받습니다. 매 전시회는 보름마다 열리는데, 연간 예약이 다 찹니다.
작은 지역이어서 의지만 있다면 예술 활동을 경험할 기회가 더 많이 열려 있습니다.
곡성군은 농촌 소멸 지역에서 그간 오랜 노력으로 행복도시로 조금씩 전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율로 보면 행복도시 우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역의 53번째 괘인 점괘(漸卦)는 이런 노력을 담고 있습니다. 풍산점(風山漸)이라고 읽습니다. 상징은 ‘높은 산 위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높은 산 위의 나무가 빨리 자라지는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자라지만 아름다운 산을 만들어 갑니다. 곡성군의 행복도시 운동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생연필 전시회에서 서현호 선생과 여러 작가가 함께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는데 점괘(漸卦) 6효의 줄지어 나는 기러기의 아름다움이 보였습니다.
彖曰 漸之進也 女歸吉也. 進得位 往有功也. 進以正 可以正邦也. 其位 剛得中也.
단왈 점지진야 여귀길야. 진득위 왕유공야. 진이정 가이정방야. 기위 강득중야.
止而巽 動不窮也.
지이손 동불궁야.
점(漸)은 한발 한발 나아간다.(漸進)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처럼.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며 적절한 자리를 찾고 실력을 입증한다.
바르고 굳세게 중심을 잡고 살아낸 삶을 통해 세상을 바로 세울 수 있다.
멈출 때 멈추고, 받아들일 것은 부드럽게 받아들여 어려움 속으로 빠져들지 않는다.
象曰 山上有木 漸 君子以 居賢德善俗.
상왈 산상유목 점 군자이 거현덕선속
산 위의 나무처럼 조금씩 자란다.
지혜로운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좋은 사회를 위한 문화를 만들어 간다.
6. 上九 鴻漸于陸(逵) 其羽可用爲儀 吉.
상구 홍점우륙(규) 기우가용위의 길.
象曰 其羽可用爲儀吉 不可亂也.
상왈 기우가용위의길 불가난야.
기러기가 하늘 길(逵)을 난다.
줄지어 하늘을 나는 날갯짓이 아름답다.
빛살 김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