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2025-08-30 15:00:00
영화의 바람이 몰려온다. 폭염을 비집고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부산을 또다시 영화의 물결로 일렁이게 할 거대한 바람이다. 9월 17일부터 열흘 동안 열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그 중심에 해운대구 센텀시티에 자리 잡은 영화의전당이 있다. 위풍도 당당히 ‘빅루프’를 뽐내는 영화의전당은 2011년 제16회 때부터 중심지로 활약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첫발을 내디딘 1996년 제1회 때에도 개막식이 수영만 요트 경기장 야외 상영장에서 열렸을 뿐, 영화 상영은 부산의 영화문화가 태동한 중구 극장가 일원에서 진행됐다. 부산 구도심의 상징 용두산공원과 ‘비프 광장’이 있는 이곳은 해마다 전야제와 커뮤니티비프 등 주요 행사를 치르며 여전히 BIFF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부산 영화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이 해운대가 아닌 중구에 터를 잡은 이유이다.
∎부산 영화의 보물 창고
부산도시철도 1호선 중앙역 1번 출구에서 KB국민은행 골목으로 200m 정도 가다 보면 용두산공원 전망대인 부산타워 앞에 우뚝 솟은 대형 건물이 나타난다. 2017년 국내 최초로 개관한 영화 전문 전시체험 시설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이다. 지하 3층, 지상 4층 규모의 박물관은 부산 영화에 관한 모든 걸 품고 있는 보물 창고이다.
‘홍영철의 유산, 부산 영화를 담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1층 기획전시실로 우선 향했다. 한국영화자료연구원 홍영철(1946~2016) 원장이 평생을 바쳐 열정적으로 수집한 희귀 자료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가 한국 영화의 출발지라 할 수 있는 부산에서 모은 자료는 시나리오 2578점, 포스터 2만 5682점에 영화 잡지, 필름, 전단, 포스터까지 모두 9만 점에 이른다.
전시장에서 처음 만나는 자료는 ‘부산 극장가 풍경’이다. 홍영철 원장은 극장의 영화 간판이 사라질 때까지 주말마다 촬영에 나섰다. 화려한 색채와 실감 나는 묘사로 시선을 끈 극장 간판은 상영이 끝나면 다음 개봉작을 위해 재활용되기 때문에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홍 원장은 이를 일일이 날짜와 상영관 이름을 더해 기록으로 남겼다. 보림극장, 신도극장, 온천극장 등 지금은 이름만 남은 곳의 전성기 모습도 여기에선 생생히 살아있다.
극장 간판만이 아니다. 이곳에는 영화 포스터와 홍보용 플래카드, 지금은 사라진 학생 단체관람 풍경까지 시대상과 극장 문화가 오롯이 보존돼 있다. 담배 포장지에 새겨진 영화 광고도 눈길을 붙잡는다. 대한극장이 임권택 감독의 ‘개벽’(1991) 개봉을 알리는 내용이다. 서면 학원가에 자리했던 대한극장은 2020년 문을 닫은 후 지금은 메가박스 서면대한점으로 변신했다.
그밖에 8폭 병풍에 스틸사진이 배접된 ‘한국 영화 스틸 사진 병풍’, 얼마 전 별세한 고 김사겸 감독의 ‘창수의 전성시대’(1975) 친필 연출 대본 등 196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부산의 영화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고 홍영철 원장은 2013년 부산시문화상, 2018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특별 공로상을 받았다. 기획전시실은 2층 매표소를 통하지 않고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은 단순히 전시물을 구경하는 박물관이 아니다.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는 것 또한 이곳의 주요 기능이자 사람을 불러 모으는 포인트이다.
기존의 트릭아이 공간을 새로 단장해 지난 5월 개장한 ‘씨네뮤지엄’은 영화를 주제로 조성된 테마파크. 문을 열고 들어가면 8개의 방을 차례로 통과하게 된다. 198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품이 놓인 방, 미디어아트 기술을 활용해 부산의 명소와 추억의 영화 장면으로 사방을 휘감는 시네마 부산, 1970년대 골목을 재현한 레트로 스트리트, 아이들을 동화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판타지 월드, 거울을 활용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매직 미러, 킹콩과 라라랜드 등 해외 유명 영화 장면을 배경으로 시상식장이 조성된 어드벤처 어워즈 등이 차례로 이어진다. 무더위에 힘들어하는 아이 동반 가족이, 실내에서 데이트를 즐기려는 연인들이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에 이만한 곳이 있을까.
진짜 체험은 3~4층 체험존에서 이뤄진다. 영화의 역사와 원리, 장르, 제작 방법 등을 직접 체험하며 영화 예고편을 실제로 만들어 보는 곳이다.
우선 역사의 거리. 처음으로 고종 앞에 선보인 활동사진부터 1903년 현재의 남포동 자리에 들어선 부산 1호 극장 ‘행좌’를 포함해 20세기 초 부산에 자리 잡은 7개 극장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제작사(1924년 조선키네마주식회사)와 첫 영화상(1958년 부일영화상)도 부산의 몫이었다. 영화 OST를 감상하고 원작 만화와 소설을 둘러보고 나면 ‘해운대’(2009)와 ‘국제시장’(2014)으로 ‘쌍 천만’ 반열에 오른 윤제균 감독의 강의가 기다린다. 거리를 걷다 보면 오늘날 부산이 ‘영화도시’로 불리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 영화를 만들 차례다. 박물관 입장 때 받은 체험카드를 이용해 자신만의 영화 예고편을 촬영·편집해 완성하도록 준비돼 있다. 크로마키 촬영장에서 공룡에 맞서 싸우거나 인디아나 존스 주인공이 된 촬영본을 편집까지 마치면 퇴장 때 휴대폰에 담아 갈 수 있다.
체험존에서 만나는 희귀 자료도 적지 않다. 부산의 마지막 극장간판 미술가 권오경 씨 인터뷰 영상, 1990년대 중반까지 극장에 가면 의무적으로 봐야 했던 ‘대한늬우스’, 1998년 보림극장이 폐관할 때까지 사용하던 35mm 필름 영사기 등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4층 ‘명화극장’에서는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고전영화 베스트 59편을 골라볼 수 있다.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윤여정과 박근형의 앳된 얼굴을 만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층계를 오르내리는 계단 벽면의 BIFF 포스터(1회부터 22회까지)와 주요 장면 사진, 1층 출입구 양면을 지키는 블랙팬서와 스파이더맨 조형물까지 영화체험박물관은 어느 한구석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영화 테마파크이다. 개관 9년째를 맞으며 부산영화체험박물을 찾는 관람객들이 점점 늘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잦다고 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지난해에만 17만여 명이 방문했는데, 그중 약 15%가 외국인이다"라고 밝혔다.
박물관·씨네뮤지엄 성인 기준 각 1만 원, 통합 1만 4000원. 부산 시민은 7000원, 1만 3000원.
한편, 영화체험박물관은 시민참여형 프로그램 ‘봄씨네클럽’을 운영한다. 이달 30일과 오는 12월 20일에는 극단 인터미션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뮤지컬 버스킹’이 열린다. 1층 영상홀에서 무료로 진행되는 버스킹에서는 뮤지컬 영화 ‘난 공주, 이건 취미’의 OST를 기반으로 한 콘서트가 펼쳐진다. 9월 6일부터 12월 6일까지 다섯 차례 열리는 ‘영화로운 수업’은 전문 해설자와 함께 영화를 감상하고 토론하는 참여형 시네마 클래스이다. 1층 강의실에서 진행되며 참가비는 5000원이다. 문의 및 관람 예약은 전화(051-715-4200)와 SNS를 통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