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 2025-09-08 07:00:00
금융회사가 파산 등으로 예금을 지급할 수 없었던 과거 ‘저축은행 사태’ 등에 대비한 예금자보호한도가 이번 달부터 기존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상향됐다. 제도 시행 전부터 2금융권(저축은행·상호금융)으로 자금이 대거 쏠리는 이른바 ‘머니 무브’ 가능성이 높게 제기됐으나 아직은 비교적 잠잠한 상태다. 당장 은행과 비은행 간의 금리 격차가 크지 않고 제도 시행 초기인 만큼 이를 지켜보자는 소비자가 많은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예금자보호한도가 기존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2배 상향됐다. 24년간 5000만 원에 그쳤던 예금자보호한도가 상향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국민이 원하는 일인 만큼 패스트트랙을 지정해서라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힌 게 주요 배경이다.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특히 2023년 7월 발생한 ‘새마을금고 위기설’에 대규모 자금 이탈세가 나타나자 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도를 상향할 경우 위기 때 급하게 빼내야 할 자금 규모가 줄고 이는 금융 시스템 안정성 및 시장 불안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란 취지다. 실제 2022년 기준 한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예금자보호한도 비율은 1.2배로, 영국(2.3배)과 일본(2.3배), 미국(3.3배) 등 해외 주요국에 비해 낮다.
예금자보호한도가 경제 성장 등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예금 규모가 5000만 원을 넘겨 보호받지 못하는 예금 규모는 2024년 3월 기준 1454조 3000억 원으로 전체 금융권 예금 규모의 49.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이 적용되는 상품은 예금보험공사가 보호하는 은행, 저축은행, 보험사(생명보험·손해보험), 투자매매·투자중개업자, 종합금융회사 등이다. 각 상호금융중앙회가 보호하는 농협, 신협, 수협, 새마을금고 등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으로는 예·적금을 비롯해 보험계약 해약환급금, 투자자예탁금 등 원금 지급이 보장되는 상품이 대상이다.
24년 만에 예금자보호한도가 대폭 상향됐지만 시장에서 예측했던 ‘머니 무브’ 현상은 아직 잠잠한 것으로 평가된다. 당초 시장에서는 은행권에서 비은행권으로 자금이 쏠릴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 원으로 상향하면 저축은행 예금은 16~25%가량이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또 2023년 국회 입법조사처는 “보호한도를 1억 원으로 상향할 경우 저축은행 예금이 최대 40% 증가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머니 무브’ 현상이 일어날 경우 금융사의 유동성이나 건전성 이슈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은 지난 5월부터 상시점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모니터링을 진행왔다. 다만 아직까지는 자금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 은행권의 경우 7월 말 기준 예금 잔액은 2270조 4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3.5% 늘었다.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입법예고일인 지난 5월 16일과 비교해 2.1% 늘었다. 저축은행도 7월 말 기준 예금 잔액은 100조 9000억 원 수준으로 입법예고일 대비 2.8% 증가했다. 상호금융업권 또한 7월 말 기준 예금 잔액이 928조 7000억 원으로, 입법예고일 대비 0.8% 증가했다.
예금자보호한도가 상향된 9월도 상황은 비슷하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1일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제도 시행 상황을 점검한 자리에서 “특정 금융권이나 권역으로 쏠려 시장이 불안해질까 걱정했는데 특별한 징후 없이 순조롭게 돼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금리 격차가 크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7월 신규취급액 기준 정기예금(1년) 금리는 은행권의 경우 2.52%로, 저축은행업권 3.02%와 0.5%포인트(P) 차이에 불과하다. 이미 대부분의 예금자가 법의 보호 아래에 있는 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은행권 예금자 중 97.8%가 5000만 원 보호 한도 내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이미 고액을 보유한 예금자들은 2금융권에 분산 배치해놓은 만큼 이동 유인이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다만 은행권과 2금융권 모두 예금 만기가 집중되는 올해 4분기를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수신금리 재조정에 따른 은행과 저축은행 등이 특판 우대금리 등에 있어 한시적 가격 경쟁을 나설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 예금 만기 물량이 큰 구간에서 저축은행 업권의 변화가 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대형사와 중소형사 조달 여건 격차가 벌어질 경우 일부 기관은 조달비용 급등(수신금리 인상 압력) 또는 수신 이탈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