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2025-09-07 15:45:21
-9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일대에서 열린 ‘2025 삼청 나잇’ 현장에서.
서울의 밤이 예술 축제로 빛났다. 갤러리현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선재아트센터, 학고재, 국제갤러리, 선혜원 등 ‘한국 미술 1번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이 작품 감상과 축제를 즐기려는 이들로 들썩였다. 오후 해 질 무렵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20~30대 젊은 층과 외국인으로 삼청로 일대는 유독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축제 열기는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도록 이어졌다. 국내 최대 미술품 거래 장터인 ‘프리즈 서울’(9월 3~6일)과 ‘키아프 서울’(9월 3~7일)이 동시에 열린 9월 첫 주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의 밤 버전 격인 ‘삼청 나잇’ 덕분이다. 지난 1일은 ‘을지로 나잇’, 2일엔 ‘한남 나잇’, 3일은 ‘청담 나잇’. 그리고 4일은 대미를 장식한 ‘삼청 나잇’이었다.
파티 초대장 없이 누구나 들를 수 있도록 오픈한 국제갤러리는 ‘더 레스토랑’과 갤러리 뒷마당의 푸드트럭까지 동원한 ‘골목 포차’에서 떡볶이, 어묵, 튀김, 맥주, 와인 등을 무한 제공해 삼청 나잇 최대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너무 많은 인파로 정작 전시 구경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지만, ‘최부잣집 국제갤러리’라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도 마당에서 오후 9시까지 장터(MMCA 마켓)와 무료 야외 스탠딩 공연(MMCA 나잇-무경계)을 개최해 인기를 끌었다. 이날 국립현대미술관 모든 전시는 무료 개방했다.
SK그룹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사저였던 전통 한옥 ‘선혜원’(鮮慧院)도 삼청 나잇에 맞춰 야간에 개장했다. 최태원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적인 개념 예술가 김수자의 장소 특정적 거울 설치작품 ‘호흡 선혜원’을 비롯해 ‘보따리’ 등을 선보였다. 김밥과 빈대떡, 흰색·핑크빛 막걸리 등 한식 베이스의 케이터링 음식은 라이브 연주와 디제잉에 어우러져 더욱 흥취를 돋우었다.
삼청 나잇에서 만난 아트선재센터의 아르헨티나-페루 작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첫 한국 개인전은 놀라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전관을 사용하는 이번 전시는 기존 미술관 출입구를 흙더미로 봉쇄하고, 화이트 큐브를 상징하던 흰 가벽은 철거해 콘크리트 골조가 노출된 형태로 회귀해 건물을 통째로 해체한 듯했다. 때마침 작가도 미술관 옆 한옥 정원에서 열린 칵테일 리셉션에 참석해 네트워크 파티의 즐거움은 배가됐다.
올해 삼청 나잇의 대미는 오후 10시 갤러리현대 앞마당에서 시작한 ‘작두 굿’이었다. 국가 무형유산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전승 교육사인 만신(萬神) 김혜경의 ‘대동굿-비수거리’(작두 굿)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은 1000여 명에 달했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작두 굿이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문득 든 생각 하나. ‘부산 하면 축제의 도시인데, 이왕지사 사람들을 모아 놓은 ‘페스티벌 시월’이나 ‘루프 랩 부산’ 같은 대형 미술 행사 때 구남로~해운대 해변~달맞이언덕에 이르는 구간에서 ‘해운대 나잇’을 열거나 중앙동과 영도를 잇는 지역에서 커피와 미술, 예술 행사를 더해 ‘원도심 나잇’을 열 수는 없을까?’ 미술이, 혹은 예술이 누구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예술이자 축제로 거듭나는 순간을 부산서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