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 2025-02-06 17:55:00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6일(한국 시간) 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스프링캠프인 대만 타이난 아시아태평양국제야구센터에 정적을 깨는 소리가 울렸다. 선수들의 야간 배팅 훈련에서 나오는 소리가 마치 내린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이면서 내는 소나무 가지의 비명과 흡사했다. 지난달 25일 이곳에서 전지훈련이 시작된 이후 훈련이 있는 날이면 단 한 번도 거른 적 없이 야간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선수들의 자발적인 훈련이다.
‘7년 연속 야구 없는 가을’의 오명을 벗어내기 위한 선수들의 몸부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롯데는 전지훈련 2일 차부터 다른 선수들보다 일찍 훈련하는 얼리(Early)조를 편성했다. 투수와 야수조 모두 번갈아 가며 아침 일찍부터 훈련에 나선다.
얼리조 편성과 관계없이 매일 아침 일찍 훈련에 나서는 선수들이 있다. 바로 포수들이다. 포지션 특수성 때문이다. 투수들의 공을 받아야 하는 포수들은 투수들의 불펜 피칭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타격·수비 훈련을 해야 한다. 롯데 임훈 타격코치는 “스프링캠프 기간에는 포수들이 고생이 많다. 피곤할 수밖에 없지만 아침 일찍 나와 타격 훈련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매일 얼리조에다 야간 훈련까지 전지훈련 때의 포수들은 가장 훈련량이 많은 포지션이다.
10년 이상 롯데의 안방을 책임지던 강민호(삼성 라이온즈)가 2017년 팀을 떠나면서 포수 자리는 롯데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됐다. 포수는 팀 포지션의 중심이자 핵심이다. 투수와의 찰떡 호흡으로 타자를 상대해야 하는 것은 물론 더그아웃의 사인을 제일 먼저 받아서 투수와 야수들에게 전달한다. 수비 위치 조절과 도루를 막기 위한 견재, 뜬공과 번트 처리, 블로킹 등 수비 부담이 가장 큰 포지션이다. 팀 플레이의 상당 부분을 책임진다고 해서 ‘안방마님’이라고도 한다.
롯데는 강민호 이후 붙박이 ‘안방마님’이 없어 고전했다. 롯데는 정보근, 나균안 등 젊은 선수로 강민호의 공백을 메우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2019년엔 48승 93패 3무(승률 0.340)로 꼴찌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급기야 롯데는 2022년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유강남을 4년 총액 80억 원에 데려왔다. 당시 기대가 많았다. 유강남은 통산 118개의 홈런을 때려 낸 공격형 포수인 데다 무엇보다 경험 많은 베테랑이어서 더욱 믿음이 갔다. 유강남은 롯데 유니폼을 입은 첫 해인 2023시즌 121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1, 10홈런, 55타점을 남기며 베테랑으로서의 존재감을 지켰다. 지난해는 최악이었다. 유강남은 지난해 52경기에 나와 타율 0.191, 5홈런, 20타점에 그쳤다. 2015년 1군으로 뛴 이후 처음으로 100경기 미만 출전에 타격 지표까지 가장 나빴다.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던 유강남은 부상으로 지난해 7월 수술대에 오르면서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했다.
롯데로서는 유강남의 부활이 절실하다. 유강남이 안방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타선에서도 제 역할을 해준다면 롯데는 ‘7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 실패’라는 오명을 벗어버릴 수 있다. 유강남도 누구보다 이 같은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롯데 선수단보다 일주일 먼저 대만 타이난에 와서 현지 적응 훈련을 시작했다. 유강남은 “대만에 일찍 들어와서 현지 적응과 개인 훈련을 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면서 “야구를 잘하고 다시는 아프지 않기 위해 살을 뺐다. 현재까지는 만족하면서 운동 중이다”고 말했다.
타이난에서 만난 유강남은 보기에도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수술을 받은 무릎에 더 큰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체중부터 줄인 것이다. 그는 강도 높은 훈련과 철저한 식단 관리를 통해 10kg 넘게 몸무게를 감량했다. 유강남은 “지난해 집에서 야구를 지켜보는데 너무 속상하고 안타까웠다”면서 “그 아픔이 다시 기쁨으로 미소 지을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팬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2025시즌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올 시즌이 기대되는 또 다른 안방마님은 6년 차 포수 정보근이다. 그는 유강남 다음으로 1군 경험이 풍부하다. 정보근은 강민호가 떠난 후 2019년부터 기회를 받기 시작했지만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다. 수비력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문제는 공격력이었다. 1할대 타율이 늘 발목을 잡았다. 2020년(0.150)과 2022년(0.191) 1할대 타율로 저조하던 정보근은 2023년에는 타율 0.333(81타수 27안타), 1홈런, 13타점으로 나아진 공격력을 보였다. 하지만 ‘반짝 선전’이었다. 정보근은 지난해 타율 0.226, 2홈런, 7타점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유강남의 부상 이후 손성빈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한때 2군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올해 정보근는 절박하다. 벌써 프로 7년 차다.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니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정보근은 “이제 마냥 어린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에 준비를 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근은 약점으로 지적되는 타격도 보완 중이다. 그는 “예전에 롯데에 계셨던 박헌도 선배님이랑 전준우 선배에게 타격 지도를 많이 받고 있다. 지난해보다는 분명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면서 “열심히 준비해서 올해는 꼭 가을야구 갈테니 팬들도 많이 응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만/타이난=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