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현 기자 songsang@busan.com | 2025-03-26 17:23:20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이 물류 시장에 40여 년간 몸담은 ‘물류통’ 최원혁(65) 전 LX판토스 사장을 새 수장으로 맞았다. 최 대표는 지난해 해운업 호황의 정점에서 내리막길을 탄 HMM의 실적을 방어하고, SK해운 일부 사업부 인수를 마무리 짓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정부 지분이 70%에 달하는 HMM 민영화라는 만만찮은 숙제도 갖고 있다.
HMM은 26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제49기 정기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최 전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3M코리아, 로레알코리아 등 글로벌기업에서 물류 업무를 담당한 뒤 CJ대한통운을 거쳐 2015년부터 2023년까지 8년간 LX판토스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다. LX판토스는 범LG가로 분류되는 LX그룹의 물류 서비스회사로 연간 해상 물동량 기준 국내 선두 기업이다. 최 대표는 2019∼2023년에는 한국통합물류협회장도 겸임하는 등 40여 년간 물류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최 대표는 성균관대 응용통계학과 출신답게 수리에 능하고 꼼꼼한 업무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 해운업이 물류업과 연계성이 큰 만큼 최 대표의 업무 적응은 어렵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전임 김경배 대표와 배재훈 대표 역시 물류회사 출신이었다.
최 대표가 처한 대내외 상황은 녹록지만은 않다. 해상운임을 가늠하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평균 2506포인트(P)였지만 지난 21일 기준 1292.75P까지 떨어졌다. 해운업계가 통상 SCFI 손익분기점을 1000P로 보는 만큼 조만간 적자 구간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
증권업계가 예상하는 올해 HMM의 영업이익은 1조 9000억 원대로 전년(3조 5128억 원) 대비 반토막 수준이다. 지난해 HMM은 홍해 사태로 인한 해운 대란과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감 속 해상운임이 급등하며 전년 대비 500%가 넘는 영업이익 향상을 이뤄낸 바 있다.
최 대표로서는 취임 첫해부터 전년 대비 실적 악화가 예고된 만큼 외형 확장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과제는 SK해운 일부 사업부 인수 마무리다. HMM은 최근 SK해운의 원유운반선(탱커), LPG선, 벌크선 사업부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현재 실사를 진행 중으로 다음 달 중 최종 계약 여부가 결정된다.
HMM의 사업 구조가 공급과잉이 우려되는 컨테이너선에 집중돼 있어 이번 인수는 포트폴리오 다각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다만 인수 가격을 놓고 매각주체와 시각차가 커 최 대표가 협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임을 포함하면 최대 3년까지 임기가 보장되는 최 대표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HMM 민영화다. 지난해 하림그룹과 매각 협상이 무산된 뒤 민영화 논의는 중단된 상황이다.
문제는 HMM의 몸값이다. HMM은 산업은행(산은)과 해양진흥공사(해진공)가 지분 67%를 들고 있다. 더군다나 내달 정부가 보유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정부 보유 지분은 71.69%까지 올라간다.
HMM 인수가 불발된 것은 호황기를 맞아 자산가치가 26조 원까지 불어나며 인수 후보들이 부담을 느껴서였다. 현재도 정부 지분 70%와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하면 HMM의 몸값은 20조 원 수준이다. SK해운 일부 사업부 인수로 HMM이 더 무거워지면 국내에선 인수할 기업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단 예상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기업가치는 훼손하지 않으며 정부와 회사가 수긍할 수 있는 적절한 민영화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최 대표의 몫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 대표의 경영 목표가 회사 매각은 아니지만 임기 내에 민영화 논의는 재개될 것”이라며 “민영화를 두고 입장이 다른 산은과 해진공 사이에서 최 대표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