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 곁에서… 평화와 위로 건넨 삶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21일 오전 7시 35분… 88세로 선종
아르헨티나 노동자 부부 아들로 태어나
2013년 첫 남미 출신 교황으로 선출
바티칸 부패척결·관료주의 타파 ‘앞장’
2014년 한국 방문·세월호 유족 위로
전쟁 난민·기아 등 문제 해결에 헌신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2025-04-21 18:38:59

온화한 미소로 소외된 이들을 위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오전 7시 35분 선종(善終)했다. 2013년 3월 역사상 첫 남미 출신으로 교황에 선출돼 즉위한 지 12년 만이다.

앞서 교황은 기관지염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지난 2월 14일부터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이후 추가로 폐렴을 진단받는 등 건강 상태가 급속히 나빠졌다고 알려지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교황의 회복을 기원하는 기도회가 열렸다. 역대 최장 기간인 38일간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 이후 산소마스크를 쓰고 휠체어에 앉아 부활절에도 모습을 보이는 등 공개 일정을 수행해 건강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지만, 끝내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의 부패척결과 관료주의 타파’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2013년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한 후 열린 콘클라베에서 제 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당시 관료제적 폐해와 부패로 얼룩진 바티칸의 개혁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교황청이 부패 스캔들 등으로 홍역을 치른 만큼, 개인적으로 청렴하고 교리적으로는 보수적이며 사회적으로는 개혁적인 교황이 선출됐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본명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인 교황은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이탈리아계 노동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22세에 수도회인 예수회에 입회하며 사제의 길을 걸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등으로 봉직하면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자들을 향한 행보로 국민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는 전임 베네딕토 16세(2023년 1월 선종)가 고령으로 인한 직무의 어려움을 이유로 물러나자, 다섯 차례의 콘클라베(교황 선출 비밀투표) 끝에 새로운 교황이 됐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교황 이름으로 처음 선택한 그는 전쟁과 기아, 기후 변화 등 인류가 맞닥뜨린 과제의 해결을 위해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며 전쟁이 발발한 뒤엔 전쟁의 평화적 해결과 난민 구제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국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즉위 다음 해인 2014년 8월 제6회 가톨릭 아시아청년대회 및 윤지충 바오로 등 124위 시복식 집전을 위해 닷새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소탈하고 자애로운 모습이 한국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역대 한국인 추기경 중 절반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했고 파격 인사로 애정을 나타냈다.

위에서부터 2023년 이탈리아 로마의 제멜리 병원에서 아이를 잃은 여성을 위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2014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위로하는 모습. 2016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손을 흔드는 교황, 2019년 부활절 전야 미사에서 한 남성에게 견진성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AFP연합뉴스 위에서부터 2023년 이탈리아 로마의 제멜리 병원에서 아이를 잃은 여성을 위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2014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위로하는 모습. 2016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손을 흔드는 교황, 2019년 부활절 전야 미사에서 한 남성에게 견진성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AFP연합뉴스

교황은 방한 중 세월호 참사 유족을 위로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꽃동네 장애인 등 고통받거나 소외된 이들과 마주하며 한국 사회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했고 고급 방탄차 대신 준중형 자동차를 이용하는 검소하고 소탈한 행보로 감동을 안겼다. 교황은 올봄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산불이 확산해 큰 피해가 발생하자 위로의 뜻을 표명하기도 했다.

또 오는 2027년 '세계청년대회'(WYD)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해 교황의 4번째 방한을 약속하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들과도 소통을 거듭하며 한반도 평화나 남북 관계에도 큰 관심을 쏟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에 대해 침묵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인권단체에서 2010년도에 고발된 적도 있다. 예수회 소속의 사제 2명이 독재정권에 납치돼 고문당한 사건에 침묵했다는 의혹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 군부 유력자의 가족신부 등의 개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독재자들에게 사적으로 선처를 호소하였고, 두 사제는 결국 풀려났다고 밝혀졌다.

▶프란치스코 교황 연보

1936년 12월 17일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1958년 = 예수회 입문. 산미겔 산호세 대학서 철학 전공

1969년 = 사제 서품

1980년 =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 원장

1998년 =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2001년 = 추기경 임명

2013년 3월 = 교황 선출

2013년 7월 = 첫 로마 바깥 사목활동으로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방문. 첫 회칙 ‘신앙의 빛’ 발표. 동성애 유화 발언

2014년 5월 = 요르단강 서안 베들레헴 방문. 분리장벽서 기도

2015년 6월 = 가톨릭 첫 환경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 발표

2019년 2월 = 이슬람교 발상지 아라비아반도 방문.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서 미사 집전

2019년 2월 = 수녀 대상 사제 성폭력 인정

2021년 2월 =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 고위직에 첫 여성 임명

2021년 6월 = ‘미성년자 성범죄 성직자 무관용’ 개정 교회법 반포

2021년 7월 = 결장 협착증 수술

2021년 11월 = 바티칸 행정 총괄 사무총장에 첫 여성 임명

2022년 2월 = 이탈리아 TV 토크쇼 ‘케 템포 케 파’(Che tempo che fa) 출연

2022년 2월 = 교황청 주재 러시아 대사관 방문해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 전달

2023년 2월 = 자진사임설 반박

2023년 3월 = 기관지염으로 입원

2023년 6월 = 탈장 수술

2023년 12월 = ‘동성 커플 축복’ 공식 승인

2025년 2월 14일 = 기관지염으로 입원

2025년 3월 23일 = 퇴원, 바티칸으로 복귀

2025년 4월 21일 = 88세로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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