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2025-02-17 20:00:00
“마약 했니?” 마약중독연구소 이선민 이사장은 2016년 겨울 어느날 집으로 돌아온 아들 모습이 무척 이상했다고 회상했다. 아들 머리가 만화 ‘우주소년 아톰’에 나오는 아톰처럼 우스꽝스러웠다. 머리에 헤어스프레이를 마구 뿌렸다는 아들은 한겨울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이 이사장은 동물적 감각으로 아들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게 마약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기억상실
이상한 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아들은 종종 ‘친구 집에 있다’는 말과 함께 3~4일 연락을 끊었다. 그러다 무언가에 잔뜩 취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 이사장은 아들이 술을 많이 마셨다고 여겼다.
알고 보니, 그 즈음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이사장의 아들 A 씨는 클럽에서 마약을 처음 접한 것이었다. 클럽 관계자가 정신과에서 주는 일종의 각성제라고 속이며 약을 건넸다고 한다. 술에 취한 A 씨는 약을 복용하고 3일 동안 기억을 잃었다. A 씨가 먹은 정신과 약은 사실 중독성이 매우 강한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이었다.
■ 절도
“‘정말로 상대방을 저주하면 마약을 먹여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약 중독자가 생기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인데, 정말 비극입니다.”
이 이사장 부부는 안간힘을 다해 아들에게서 마약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A 씨는 새벽에 몰래 집을 나갔고, 며칠이 지나 모텔에 쓰려진 채 발견되는 일이 반복됐다. 돈이 구해지지 않자 A 씨는 당시 초등학생이던 동생 노트북을 훔쳐 마약을 샀다.
A 씨 머리에는 오직 마약 생각만 떠돌아다니는 듯했다. A 씨는 자신을 가로막는 부모에게 “보내 달라. 어차피 지금 막아도 나중에 새벽에 몰래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A 씨가 떠난 자리에는 ‘자신이 알던 아들이 없어졌다’는 절망감이 밀려들었다.
■ 도피
A 씨는 아버지와 함께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을 떠났다. 마약을 공급하는 이들과 멀어지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었다. 싱가포르에 간 A 씨는 그곳에서 대학에 들어갔고, 수영·골프 같은 운동에 몰두했다. 부모가 보기에 반 년간 마약 복용 낌새도 없었다. 성공적으로 마약을 끊을 기회였다.
어느 날 식사 자리였다. A 씨는 ‘화장실을 간다’는 말을 남기고 종적을 감췄다. 이 이사장 부부는 1주일 만에 연락이 닿아 외곽의 모텔로 갔고, 그곳에는 ‘누군가 나를 쫓아오고 있다’며 환청과 환각을 겪는 A 씨가 있었다. “가족도 2년 반 동안 매우 지쳤어요. 하루 종일 옆에서 감시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무력감이 가득했지요.”
■ 수감
2019년 귀국한 A 씨는 경찰에 자수했다. 스스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컸다. 이 이사장은 “저는 엄마다. 아들 목소리를 들어보니 죽어가고 있는 게 느껴졌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경찰에 연락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 신고로 모텔에서 체포된 A 씨는 교도소에 갇혔다. 세상과 격리되면 마약과 멀어질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 이사장은 교도소를 ‘마약 육성학교’라 지칭했다. 마약 판매책과 단순 복용자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일종의 ‘마약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A 씨도 2021년 출소하고서 일주일 만에 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 껍데기
이 이사장은 인터뷰 동안 자신을 ‘빈 껍데기’라고 자주 말했다. A 씨의 마약 중독으로 혼이 빠졌다는 설명이다.
아들의 마약 중독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다른 자녀들에게 충분히 신경 써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담긴 말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른 두 아이 모두 대학에 들어갔다는 게 이 이사장 설명이다. 그는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엄마가 아닌 혼이 빠진 사람이었고, 다른 아이들한테도 미안했다”고 전했다.
■ 중독연구소
“마약 청정국이란 인식 때문인지, 국내에선 단순 마약 복용자도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에요. 처벌보단 치료와 치유 접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사장은 마약과 싸우기 위해 지난해 기독교마약중독연구소를 설립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재단법인으로 인정받아 공식 출범했다. 마약 중독의 치료와 예방 등이 연구소 설립 취지다. 이에 재활 센터와 병원에 후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세미나 등도 개최해 마약 범죄 예방에 힘쓰고 있다.
이 이사장은 이미 마약에 중독된 청소년들을 어떻게 사회로 돌려보낼지 모든 사회 구성원이 다 같이 궁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아들과 같은 친구들이 회복돼서 사회에 복귀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노력할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