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오명을 박제한 권력 중독자들의 최후

■쫓겨난 권력자 / 박천기

선량한 시민 혹은 영웅에서
집권한 뒤 돌변 국민에 맞서
무도한 지도자 19명의 비극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5-02-20 11:02:54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이 대통령궁 앞에서 쿠데타 시도 저지 후 지지자 앞에서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이 대통령궁 앞에서 쿠데타 시도 저지 후 지지자 앞에서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바샤르 알아사드, 에보 모랄레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폴 포트, 프랑수아 뒤발리에…. 현대사에 폭군과 독재자 혹은 어리석은 지도자인 혼군(昏君)으로 기록된 권력자들이다. 끝끝내 권력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국민에 저항한 자들의 말로는 짐작대로 심히 비참했다. 혼돈의 시대에 맞춰 나온 <쫓겨난 권력자>는 무도한 권력자 19명의 최후를 그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나와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에 있냐”고 항변했지만 중남미 볼리비아에서 3시간짜리 쿠데타가 아주 최근에 발생한 적이 있다. 지난해 6월 26일 오후 3시 탱크와 장갑차로 무장한 볼리비아 군이 수도 라파스에 있는 대통령궁을 포위하고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다 3시간 만에 물러났다. 당시 외신은 중남미 역사상 가장 짧은 쿠데타라고 논평했다.

그런데 반란을 주도했던 호세 수니가 장군은 쿠데타가 아르세 현 대통령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자백했다. 셀프 쿠데타이자 자작극이라는 것이다. 이 3시간짜리 쿠데타의 배경에는 모랄레스 전 대통령과 현 아르세 대통령의 갈등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피를 나눈 혁명동지이자 정치적 동반자였다. 볼리비아와 한국이 평행이론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아이티의 독재자 뒤발리에는 틈만 나면 대통령 궁에 부두교 사제를 불러 비밀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유명했다. 부두교 사제들은 뒤발리에 최측근이라 대통령 궁에 수시로 초대됐고, 중대한 국가 정책도 결정하는 막후 실세였다. 독재자들이 정권을 잡으면 하는 일은 대개 비슷한 모양새다. 뒤발리에 역시 비밀경찰을 조직하고, 통금을 무기한 연장하고, 공산주의자 척결이란 명목으로 수백 명을 체포해 즉결 처분했다. 새 헌법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선포했지만 진짜 명목은 부두교를 지하의 사이비 종교가 아닌 공식 종교로 인정하겠다는 취지였다.

뒤발리에는 유독 22라는 숫자에 집착해 중요한 행사를 22일로 잡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정권 유지에는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취재해 사진으로 남기는 식의 이미지 조작도 큰 몫을 했다. 아이티를 세계 최악의 빈국이자 깡패의 나라로 만든 원흉이 바로 대통령이었다. 그는 운 좋게 천수를 누렸지만, 후계자인 아들이 실각하며 그의 유해가 파헤쳐지는 수모를 당한다.

12·3 비상계엄 선포를 대통령의 통치행위라고 강변하는 걸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가장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워터게이트를 자신의 실책이나 범죄행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 인터뷰에서 닉슨은 “대통령이 한다면 그것은 불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닉슨 사임 열흘 전, 대통령의 불안전한 정신 상태를 우려한 국방장관은 군에 대통령과 백악관의 군사 명령, 특히 핵전쟁 관련 명령을 따르지 말라는 비밀 지시를 내렸다. 영혼 없이 나라의 녹을 먹어서는 안 된다.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스 2세는 선량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존경받지 못하는 황후를 두었고, 더 나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황후의 간섭을 받아들였다. 전쟁 중에 요승 라스푸틴의 눈에서 벗어난 지휘관을 경질하라는 황후의 편지를 받고 그대로 실행할 정도였다. 그 결과 자신은 물론 가족의 비참한 최후로 끝이 난다.

불과 얼마 전인 2024년 12월 9일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가 러시아로 망명하는 일이 벌어졌다. 따져보니 그가 시리아에 끼친 악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0년이 넘는 시리아 민주화 운동, 내전을 거치면서 반인륜적 학살과 공습으로 60만 명의 시리아인이 사망했다. 인구의 30%에 육박하는 660만 명은 난민이 되었다. 권력을 잡은 독재자의 다음 목표는 돈이 되기 마련이다. 알아사드가 러시아로 빼돌린 외화가 193조 원에 이른다니 말 다했다.

아프리카에서는 하나의 내전이 끝나면 또 다른 내전으로 이어지고, 한 명의 독재자가 사라지면 약속이나 한 듯 또 다른 독재자가 찾아온다. 만약 12·3 비상계엄이 성공했다면 어쩔뻔했나. 민주 시민의 용기와 조상님들의 보우하심에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린다. 최악의 독재자로 기록된 이들도 한때는 선량한 시민이었거나 심지어 영웅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박천기 지음/디페랑스/284쪽/1만 8800원.


<쫓겨난 권력자> 표지. <쫓겨난 권력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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