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2024-12-01 18:08:57
인천이 고등법원 유치에 성공한 데 이어 해사전문법원(이하 해사법원) 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순을 밟으면서, 관련 논의가 지역 간 갈등과 정쟁 요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가 해운 경쟁력과 지역균형발전 등의 명분에도 불구하고 주춤하는 사이 부산의 해사법원 유치가 멀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1일 지역 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인천고등법원 설치를 골자로 한 법 개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본회의를 통과했다. 인천고법은 2028년 3월 개원할 예정이다. 이날 본 회의에는 대전·대구·광주 회생법원 설치 법안도 일괄 처리됐다.
고등법원 유치에 성공한 인천은 이를 원동력 삼아 해사법원 설립까지 추진한다. 해사전문법원 인천유치 범시민운동본부는 지난달 28일 “인천고등법원 국회 통과를 환영한다. 이제는 여야 정치권과 해사전문법원 인천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정치권 또한 이에 발맞추는 모양새다.
일찍이 해사법원 설립을 추진해 온 부산은 졸지에 인천과 유치 경쟁을 치러야 할 처지에 놓였다. 고등법원 유치에 힘을 모은 인천과 달리 부산 해사법원 설립 논의는 탄력을 받지 못했다. 22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곽규택(부산 서동)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전재수(부산 북갑) 의원이 나란히 해사법원을 부산에 설립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부산은 해사법원 설립의 최적지로 꼽힌다. 세계 2위 환적항이자 7위 컨테이너 항만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주요 해상 교역의 중심지이다. 해운과 조선 등 관련 산업이 집중돼 있어 해사 사건의 발생 빈도가 높다.
그럼에도 타 지역과의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면, 해사법원 설립이 자칫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설립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앞서 21대 국회에서도 부산·인천·세종·서울 등 여러 지역이 해사법원 유치를 두고 각자 법안을 발의했다가 의견 조율 실패로 결국 폐기됐다.
지역 법조계와 시민단체는 국가 전체 경쟁력과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부산에 해사법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부산지방변호사회는 지난달 28일 입장문을 내고 “수도권인 인천에 고등법원을 설치하면서 부산의 해사법원 설립을 외면한 것은 지역균형발전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염정욱 부산지방변호사회장은 “1984년부터 해사법원을 운영 중인 중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논의 단계조차 진척되지 못했다”며 “이로 인해 해양산업 경쟁력에서 중국과의 격차가 50년 이상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사법원 설치 추진 부울경협의회 박재율 대표는 “인천이 고등법원 유치를 계기로 해사법원 설치까지 추진하려는 것은 수도권 집중 해소라는 국가적 과제와 상충하며, 지역 간 경쟁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대표는 “국회가 부산 해사법원 설립을 위해 발의된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사법원은 선박 사고, 해상보험, 선원 관련 사건 등 해사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이다. 국내에 설립되면 분쟁 해결의 전문성과 신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로 유출되던 연간 약 3000억 원 규모의 국부를 지킬 수 있다. 앞서 부산시는 해사법원 설립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지난달 21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국내 최초로 해사 소송을 주제로 한 모의재판을 열기도 했다. 한국해양대 해사법학부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한 이 재판에서는 포클랜드 해역에서 발생한 선박 화재와 침몰 사례를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