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 독립투사들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입니다 / 강국진·김승훈·한종수

독립유공자 서훈 받은 사람들 중
외국인 76명… 일본인도 2명 포함
민족·국적 뛰어넘은 인류애 감동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2025-03-06 11:31:30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입니다> 표지.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입니다> 표지.

일제에 맞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외국인 투사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낯설다. 심지어 그런 사람이 존재했을까 싶을 정도.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외국인 독립투사의 캐릭터는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 유진을 미국으로 데려가 보호했던 선교사 요셉 스텐슨은 고종 황제의 밀서를 해외로 전달하려다 살해당한다. 영화 ‘밀정’에서는 루비크라는 유럽 남성이 의열단원 연계순과 부부로 위장해 국내로 폭탄을 들여오는 작전에 참여한다. 영화 ‘박열’에는 일왕과 그의 가족 암살을 모의한 대역죄 혐의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는 일본인 여성 후미코가 등장한다.

위에서 예로 든 3명의 극중 인물에게는 모두 실존하는 모델이 존재한다. 우선 영화 ‘박열’의 후미코는 영화 속 모습 그대로 존재했던 실제 박열의 부인이었다.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는 재판장이 사형을 선고하자 “만세”라고 외치고 끝내 옥중에서 스러져갔다. 영화 ‘밀정’의 루비크는 상하이에서 의열단의 폭탄 제조 책임자로 활약하며 일제에 맞서 싸운 헝가리인 마자르가 실제 모델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요셉 스텐슨은 고종의 비밀 특사로 세계를 누빈 푸른 눈의 한글학자이자 한국 역사가 호머 B. 헐버트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2024년 11월 현재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1만 8162명이고 이 가운데 외국인이 95명, 이중 재외동포를 제한 ‘순수’ 외국인의 수는 76명이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106주년 3·1절을 즈음해 출간된 <나는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외국인입니다>에서는 한국의 독립 투쟁에 제 일처럼 발 벗고 나선 외국인 25명을 소개한다. 다만 이 책에 나오는 이들 25명이 모두 서훈을 받은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된 영화 ‘밀정’ 루비크 역의 실제 모델이었던 마자르 역시 의열단 해체 후 행적이 묘연해져 서훈을 받지 못했다.

금발과 벽안의 외모를 가진 독립투사에게도 눈길이 가지만, 조국인 일본에 대항한 일본인 독립투사들이 조금 더 눈에 띈다. 일본인으로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이는 두 사람. 그 중 한 사람은 앞서 언급한 박열의 부인 후미코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박열·가네코 부부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후세 다쓰지다. 후세는 2·8 독립선언으로 체포된 조선인 유학생 9명을 무료 변론했고 전남 나주 농민들이 동양척식회사를 상대로 벌인 토지 반환 투쟁을 도왔으며 조선공산당 사건 변호를 맡는 등의 활동으로 '조선 프롤레타리아의 벗’으로 불렸다.

이밖에도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에서 노조 활동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9년을 복역한 이소가야 스에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이재유를 숨겨줬다가 투옥되고 실직한 경성제대 교수 미야케 시카노스케, 교원노조 조선지부 결성을 준비하다가 체포된 죠코 요네타로 등 서훈을 받지 못한 일본인들도 여럿이다.

책 내용 중 흥남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이소가야가 조선인 특고(특별고등경찰) 김세만에게 악독한 고문을 당하는 대목(69p)에서는 친일·반일의 경계를 넘어 애국심과 인류애라는 지점에서 설명하기 힘든 착잡한 상념에 휩싸인다. 책에서 언급된 일본인들은 어쩌면 민족·국적을 뛰어넘는 인류애를 위해 자신의 나라를 배신한 사람들. 현재 우리는 과연 인류애를 위해 대한민국의 이익을 등한시할 수 있을까. 강국진·김승훈·한종수 지음/부키/376쪽/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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