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 2024-12-31 07:00:00
'잠이 보약'이라는 말은 과학적 근거가 있다. 잠을 자는 동안 뇌를 비롯한 몸의 장기들은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고 신체 면역력을 강화한다. 하지만 연간 100만 명이 넘는 환자들이 불면증을 비롯해 다양한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고 있다. 선명한의원 하봉수 원장은 "심신을 같이 다루는 한의학이 불면증 치료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수면제 매일·습관적 복용 안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 진료 데이터에 따르면 수면장애 환자는 2018년 85만 5025명에서 2022년 109만 8819명으로 28.5% 증가했다. 2022년 기준 전체 환자의 절반 이상(56.8%)이 여성이었지만, 10대와 30대에서는 남성 환자가 더 많았다. 연령별로는 60대(23.0%)가 가장 많았고, 다음은 50대(18.9%), 70대(16.8%) 순이었다.
수면장애는 불면증뿐 아니라 수면 관련 호흡장애, 과다수면증,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 수면 관련 운동장애 등 수면 관련 여러 질환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 중에서도 불면증은 크게 잠들지 못하는 입면장애, 잠이 지속되지 못하고 중간에 계속 깨는 수면유지장애, 잠이 지나치게 일찍 깨서 더 잘 수 없는 조기각성장애로 나눌 수 있다. 수면 무호흡증, 기면증, 내분비계 이상 등 다양한 질환이 함께 있는 경우도 흔하다.
불면증은 스트레스 등 심리적 원인뿐 아니라 생리적 또는 환경적인 요인, 생활 습관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 졸음을 깨기 위해 마신 카페인 음료, 잠이 안 올 때 마시는 술 한 잔이나 자기 전 독서나 TV 시청, 음악 감상, 흡연 등이 잠의 질을 떨어뜨리고 불면을 유도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불면증 환자들은 밤에도 교감신경은 항진되어 있고, 부교감신경은 저하되어 있다. 잠들기 전에 몸이 충분한 이완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도 긴장과 흥분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이때 '몸을 피곤하게 하면 잠이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활동량을 늘리면 오히려 불면이 점점 더 심해져 밤새 한잠도 못 자는 경우도 생긴다. 이때부터는 잠을 못 자는 것에 대한 공포증까지 생기고 우울증이나 불안감도 따라온다.
불면증 환자들은 보통 수면 위생과 함께 베조디아제핀계나 스틸녹스, 졸피뎀 등의 수면제를 처방받는다. 투약 권고 기간은 대개 3개월 정도다. 수면제는 필요한 기간에 가급적 짧게, 최소 용량만 사용하는 게 원칙이다. 장기간 복용하려면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해야 한다.
하 원장은 "스트레스 상황이 심해지면 수면제를 1~2년씩 장기간 복용하면서 점점 더 약의 강도를 높이기 쉬운데, 일부 수면제는 부작용이 있고 오래 복용할수록 약을 끊기는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개골 움직임 풀어서 순환 개선
한의학에서 수면은 심(심장), 간, 담(쓸개)과 같은 장기의 기능과 관련이 높다. 또한 기혈(기와 혈)과 한열(한기와 열이 번갈아 일어나는 증상)에 따라 잠이 들고, 잠이 든 상태를 유지하고, 잠이 깨는 등의 기능이 조절된다.
여러 한의학 치료를 통해 심장과 간, 쓸개의 기능을 조절하면, 자율신경이 오작동하는 것을 정상으로 되돌려 잠이 들게 할 수 있다. 잠들기 전에 몸을 이완시키거나, 수면 상태에 적합한 체온을 유지하는 것도 돕는다.
기본적으로 불면증에 사용하는 처방은 황련, 치자, 산조인, 울금 등 다양한 약재들로 구성된다. 불면증의 양상과 체질, 한열에 맞추어 사용하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특히 이런 한약재는 오래 사용하거나 용량을 늘리더라도 신경계로 작용하는 부작용이 거의 없다.
두개천골요법을 이용한 추나치료와 두개천골 약침은 불면증 치료에 특화된 치료다. 두개천골요법이란 두개골(머리뼈), 척추, 천골(엉치뼈)을 중심으로 하는 두개천골계를 미세한 손의 감각을 이용해 정밀하게 교정하는 방법을 말한다.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하면 교감신경이 항진된 채로 몸의 긴장이 지속돼 척추 전체가 뻣뻣할 뿐 아니라 뇌를 담고 있는 두개골 주변의 뇌척수액 순환과 림프 순환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각종 신경계질환과 불안, 우울증, 소화장애, 이명, 난청 등의 증상도 같이 나타날 수 있다.
두개천골 추나치료와 약침치료를 통해 두개골 전체의 움직임을 풀어 주면, 측두골 주변의 림프 순환과 척추를 통한 뇌척수액 순환이 개선돼 흥분된 교감신경을 가라앉히고 부교감신경은 자연스럽게 활성화시킬 수 있다. 대부분 머리가 바로 가벼워지고, 횡격막의 호흡근, 복강과 골반저 근육이 이완돼 무거웠던 어깨나 가슴, 등이 편해진다. 전신의 피로감도 줄어들어 잠들기 편한 상태가 된다.
금진옥액(혀 밑) 사혈 등 어혈을 제거하는 사혈요법도 흥분했거나 화열이 심할 때 열감과 답답함을 빨리 없애 줘서 잠드는 데 도움을 준다.
선명한의원 하봉수 원장은 "한의학에서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치료를 통해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서 "가급적 초기에 한의원을 찾으면 좋고, 오랫동안 수면제를 복용했더라도 한의학의 도움을 받는다면 약을 서서히 줄이면서 수면제 없이도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