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큰 결심을 한 사람에겐 걱정보다 응원을”

일본 유일 한국어 서점·출판사 운영 김승복 대표
에세이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출간
일본에 ‘한강’ 처음 소개…동시대 한국문학 알려
3년 전 암 진단으로 ‘시한부’ 통보 받은 뒤 극복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2025-08-05 09:00:00

일본 유일 한국어 서점과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승복 대표가 자신이 쓴 책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일본 유일 한국어 서점과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승복 대표가 자신이 쓴 책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진보초(神保町)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꼭 한 번쯤 들르는 곳이다. 일본 최대 헌책방 거리라는 명성답게 주요 출판사를 비롯한 고서점 150여 곳이 밀집해 있다. 그곳에 일본 유일의 한국어 서점 ‘책거리’가 있다. 10년 전인 2015년 7월 7일 ‘책거리’를 만든 이가 김승복(56) 대표이다. 그는 ‘책거리’만이 아니라, 동시대 한국 시와 소설을 일본에 알리고 싶어서 2007년 쿠온 출판사를 차려서 한·일 문화의 가교를 놓고 있다. 책거리와 쿠온 출판사는 아래위층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엔드 유저, 즉 최종 사용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자는 생각으로 2019년부터 ‘K-BOOK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최근 김 대표가 에세이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달 출판)를 펴내 주목받고 있다. 번역서 등 다른 사람 책을 주로 출간한 김 대표가 처음으로 저자가 되어서 쓴 책이다. <부산일보>도 이전에 김 대표 이야기를 몇 번인가 다룬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저자 김승복’을 다루기로 하고 도쿄의 책방을 찾아갔다. 그의 책이 나온 뒤, 몇 군데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한 적은 있지만, 책방까지 찾아온 기자는 처음이라고 했다.

“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보는 겁니다. 심지어 저자까지도요. 사실은 ‘책거리’ 7주년이던 2022년 77명의 손님 이야기로 소책자를 만들어 보려고 남몰래 혼자서 썼던 원고가 있었어요. 갑자기 아프게 되면서 책을 못 냈죠. 그러다 제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달 출판사에서 출판을 제안한 거예요.”

'책거리' 10주년 기념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책거리' 10주년 기념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책거리' 1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 사진들.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책거리' 1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 사진들.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김 대표는 당시 “길면 6개월, 짧으면 3개월 살 수 있어요”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암 진단과 함께 모든 걸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신의 보살핌이 있었던지 수술이 잘 돼 컴퓨터 속에 있던 ‘오늘의 손님’들을 다시 꺼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흘렀고, “아프기 전보다 훨씬 컨디션이 좋아요”라며 활짝 웃었다.

“재미난 건요. 책이 나온 뒤 사람들 반응이에요. 대부분이 ‘고생했다, 대단하다’고 말하는데, 형제들은 오히려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했어요. 책 내용을 보니 짠했던 거죠. 다들 저 보고 대단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그저 좋아서 한 일이고, 혼자서 한 것도 아니에요. 저는 인생에서 큰 결심을 한 사람에게는 걱정보다 응원해 주면 좋겠어요.”

일본 내 유일 한국어 서점인 도쿄의 '책거리' 실내 모습.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일본 내 유일 한국어 서점인 도쿄의 '책거리' 실내 모습.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출판사와 에이전시를 운영하던 김 대표가 도쿄 한복판에 책방을 낸 이유는 단순했다. “책이 출간되면 작가를 초청해 북토크를 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달까. 자연스럽게 미디어를 불러들여야 작가와 책 소개가 가능해질 텐데 싶었고, 다른 책방들과 차별화를 위해 아예 한국어책을 파는 책방을 차리자 생각했어요.” 가장 많이 참고한 책방이 서울의 길담서원과 부산의 인디고 서원이다. “처음부터 책거리의 디자인을 ‘책이 중심이 되어 다른 콘텐츠와 협업하는 책방’으로 결정하고 참고 차 찾아다녔어요.”

김 대표와 한강 작가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쿠온 출판사가 일본에 ‘한강’이라는 존재를 처음 소개했고, 한강 작가의 작품이 쿠온을 차리게 만든 계기였다. 쿠온에서 펴낸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의 첫 작품이 바로 소설 <채식주의자>이다. 또한 2022년 ‘한시’(韓詩) 시리즈의 첫 번째 시집도 한강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였다. 이후 지금은 국내에서 절판된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와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등 한강 작가의 작품만 총 4권을 번역, 출간했다.

한강의 책 <채식주의자>(왼쪽)와 <소년이 온다> 일본어 번역본. 쿠온 출판사에서 펴낸 책으로 '책거리'에서 판매 중이다.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한강의 책 <채식주의자>(왼쪽)와 <소년이 온다> 일본어 번역본. 쿠온 출판사에서 펴낸 책으로 '책거리'에서 판매 중이다.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솔직히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작가님과 인연은 계속되고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제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도 없어요. 그래도 출판사에 대한 신뢰가 좀 커진 것 같아요. 책 판매도 확실히 늘었고요. 작가님은 저희가 3주년, 7주년, 10주년 이럴 때 계속 메시지도 보내주고 그래요. 한 번은 동영상을 보내왔는데, 제주의 파도 소리래요. 나중에 본인이 나오나 싶어서 끝까지 봤는데 그게 전부였어요. 하하하-”

한강 작가 작품 외에도 김 대표는 2014년 시작해 2024년까지 10년에 걸쳐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번역을 완간(20권)해 출간했다. 조남주 정세랑 김연수 최은영 김애란 김중혁 김영하 신경숙 이승우 천선란 편혜영 등 그의 손을 거쳐 일본 독자들에게 흘러간 한국 소설가들의 작품만 100종이 넘는다. 22평 규모의 책방은 현재 한국어 원서 3500여 권, 일본어로 쓰인 한국 관련 서적 500여 권을 판매 중이다. 앞으로는 시집 쪽도 강화할 생각이다.

'책거리' 실내 모습.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책거리' 실내 모습.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요즘 많이 신경 쓰는 건 ‘번역 스쿨’입니다. 저는 한국문학에 집중하는 출판사인 만큼 번역자가 중요하거든요. 지금도 줌으로 하는 수업을 개설 중이에요. 8회 수상자까지 배출한 ‘번역 콩쿠르’도 잘 유지해 나가고 싶어요. 올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제안해 시인 레지던시(5~6월) 공간을 처음 운영해 봤어요. 첫 주자로 신민아 시인이 다녀갔습니다.”

일본 내 유일 한국어 서점인 도쿄의 '책거리' 1층 입구에 설치한 입간판.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일본 내 유일 한국어 서점인 도쿄의 '책거리' 1층 입구에 설치한 입간판.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큰 수술을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김 대표가 꿈꾸는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뷰하러 간 날도, 진보초의 한 회사에서 책거리와 협업을 요청하러 찾아왔었다. 지금까지 ‘책거리’가 지내 온 10년을 이어서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진보초에 한국 레스토랑이 하나 생기면 좋겠어요. 우리 책방은 도쿄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많이 찾아오시거든요. 그들이 책도 보고, 한국 음식도 먹고 돌아갈 수 있는 반나절 코스 정도면 무난할 텐데 말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인들 원고를 받아서 반연간지를 발간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 나오면서 책방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한 권의 책을 샀다. 지금은 국내에선 절판이 된 한강 에세이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일본어판이다. 일본어로 된 책이어서 본의 아니게 오래오래 음미하며 읽어야 할 것 같다.

일본 유일 한국어 서점과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승복 대표.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일본 유일 한국어 서점과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승복 대표.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

국내 북토크 일정도 하나둘 잡히고 있다. 8월 8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최인아책방, 8월 21일 오후 7시 30분 부산 서점 크레타, 8월 22일 오후 7시 진주문고 본점 2층 여서재 등이다. 김 대표는 1991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과 동시에 일본 니혼대학에 유학(문예평론 전공)해 30년 넘게 일본에서 살고 있다.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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