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2025-08-04 17:28:11
부산의 대표적인 레지던시인 홍티아트센터는 2013년 설립돼 현재 13기 입주 작가 8명이 입주해 있다. 그동안 홍티아트센터를 다녀간 이들은 해외·교류 작가 29명을 포함해 108명에 이른다. 이보다 앞서 2010년 부산 중앙동과 동광동 일대 빈 건물을 부산시가 임대해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활용한 원도심창작공간 ‘또따또가’는 올해로 16년 차에 접어들었다. 6기째를 맞은 올해 또따또가 입주 작가는 시각예술로만 한정된 건 아니지만 25개 팀 156명이다. 지금까지 1500명 이상의 예술가를 배출했다. 홍티아트센터와 또따또가 두 곳이 한 단계 더 도약할 방법은 없는지, 부산문화재단과 해외 교류 관계에 있는 기관을 포함해 일본·대만·중국 등 동북아시아 3국의 몇몇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예술촌을 돌아봤다. 물리적 문화공간에서 진일보한 형태의 문화 플랫폼으로 나아가는 예술창작공간의 변화를 짚어 보고자 한다.
부산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운영하는 시각예술가를 위한 레지던시는 예술가의 창작 활동 지원과 활성화가 일차적인 목표이지만, 지역 문화 부흥이나 국제 문화 교류 촉진, 도시재생 등 설립 취지나 운영 형태에 따라 각기 다른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최근엔 레지던시 참여 자체가 예술가의 스펙이 되면서 또 다른 성장 발전의 디딤돌이 되고 있다.
일본 도쿄의 ‘도쿄 아트 앤드 스페이스 레지던시’(Tokyo Arts and Space Residency·이하 TOKAS 레지던시)는 1년(2025년 4월~2026년 3월)을 3기로 나눠서 3개월씩 8~11명이 입주하는 방식이다. 한 해로 치면 30명 정도 다녀간다. 이들이 내세운 강점은 작가 지원 시스템이다. 리서치 기반 아티스트에 적합한 공간이라는 명성만큼이나 체계적인 지원이 입주 작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특히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크리에이터 활동을 받아들임으로써 다양한 재능이 교차하는 거점이 되고자 했다. 부산의 홍티아트센터도 입주 작가의 창작 지원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또한 같은 시기에 입주하더라도 프로그램 성격이 조금씩 달라서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크리에이터들이 일정 기간 체류하는 동안 그에 따른 맞춤 지원을 하는 등 다양한 레지던스 프로그램 개발도 눈여겨볼 만했다. 예산과 인적 지원도 그에 따른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연 30명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여
우리가 현재 토카스(Tokyo Arts and Space)라고 부르는 명칭은 2017년 비롯됐다. 그전에는 2001년 도쿄도가 세운 젊은 아티스트 육성 지원 기관인 ‘도쿄 원더 사이트’(Tokyo Wonder Site) 시절이 있었고, 2017년 공익재단법인 도쿄도 역사문화재단 산하 도쿄도 현대미술관으로 조직이 통합되면서 토카스로 명칭을 변경했다.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도쿄 원더 사이트 시절인 2006년 시작해 2014년 현재의 스미다구로 이전해 계속 이어 가는 중이다.
12개의 방으로 운영되는 ‘토카스 레지던시’는 도쿄 스미다구 다치카와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다. 7층짜리 건물 4개 층을 임대해 사용 중인데 토카스를 찾아간 날은 때마침 ‘오픈 스튜디오’가 한창이었다. 7월 18~20일 사흘에 걸쳐 열린 이번 오픈 스튜디오는 2025~2026년 1기(5~7월)로 입주 중인 8명의 크리에이터가 제작과 리서치 과정을 전시·공개하고, 게스트를 초대해 토크쇼를 개최했다. 이 중에는 부산 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리서치 기반의 한국인 기획자 김정현과 영상 매체를 위주로 작업해 오고 있는 박민하 작가도 포함됐다. 일본 현지에서 선발된 작가도 있었고, 멀리 캐나다 퀘벡, 키프로스, 스페인 등에서 날아온 이들도 눈에 띄었다.
■토카스 레지던시를 주목한 이유
그들은 어떻게 토카스에 오게 된 것일지 궁금했다. 박민하 작가는 “레지던시를 하지 않고도 작업은 할 수 있지만, 어쨌든 레지던시가 좋은 건, 새로운 발상의 기회가 생기고, 그 주제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작가의 경우, 특히 세계 여러 곳의 국제 레지던시 경험이 많은 편이었는데, 토카스 레지던시의 장점에 대해서도 “어떤 테마를 고민하고 있을 때, 여러 명의 스태프가 이런 전문가가 있다고 알려주거나 다른 분을 소개해 주는 식으로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준 게 좋았다”고 전했다. 박 작가는 ‘두 도시 간 교류 사업’ 일환으로 시행 중인 ‘서울-도쿄 레지던시 교환 프로그램’ 으로 토카스에 온 경우였는데, 도쿄에 와서 누구를 만날 것인지,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인지 미리 세세하게 알려주는 등 토카스의 작가 서포트 시스템은 확실히 남달랐다고 강조했다.
김정현 기획자는 ‘오픈 콜’, 즉 ‘큐레이터 초빙 프로그램’ 국제 공모에서 선발된 경우이다. 국제 레지던시 참여 자체는 처음이었는데, 토카스를 주목한 이유는 ‘조직력’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도 토카스에 머무는 동안 일본 전국 각지를 리서치 하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개인 네트워크도 활용했지만, 토카스 입주 작가라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전했다. 도쿄에 있는 동안에는 큐레이터 토크(미니 강연)를 하거나 큐레이터로서 일본 젊은 작가를 1 대 1로 매칭해 멘토링하는 프로그램도 경험했다. 비공식이지만 일본의 젊은 작가를 만나는 기회도 토카스 측에서 종종 마련했다.
■“도쿄 아트 씬 활성화도 중요”
토카스의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고 있는 콘도 유키 학예과장은 “우리한테는 세 가지 미션이 있는데, 첫째 신진과 중견 아티스트 계속 지원, 둘째 창조적인 국제 문화교류 촉진, 셋째 실험적인 창작 활동 지원”이라면서 “레지던시는 두 번째 미션의 거점이 되는 것이고, 지원의 핵심은 발표(공연과 전시)와 제작”임을 분명히 했다. 이어 그는 “우리 레지던시는 코디네이터적인 지원에 힘을 많이 쏟고 있다. 도쿄는 상대적으로 스튜디오가 넓지 않은 반면 어떤 전문가나 장소 접근이 쉬운 만큼 리서치를 한다거나 네트워크를 확충하는 서포트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쿄의 장점을 살린 지원인 셈이다.
오타케 가오리 레지던시 계장은 “입주 작가들의 제작을 서포트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도쿄 아트 씬의 활성화도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입주 작가를 선발할 때도 “왜 토카스, 왜 도쿄에서 제작하려고 하는지 동기를 중요하게 본다”고 밝혔다. 오타케 계장은 ‘에코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토카스 혼고 프로그램 중에는 35세 이하의 젊은 아티스트를 공모해 개인전 개최를 지원하고, 그들이 국내 레지던시 경험을 쌓아서 해외 레지던시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등 미션1과 미션2도 동떨어진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결국은 해외 작가뿐 아니라 일본에 있는 젊은 작가를 육성하는 것으로 연결된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는 곧,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미술 생태계 구축이라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프로그램 운영비만 연간 3억 원
올해 1기 참여자 면면을 통해서 알아본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모두 6개 트랙으로, △해외 크리에이터 초빙 프로그램(키프로스와 스페인에서 온 외국 작가 2명) △로컬(일본) 크리에이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시즈오카와 니가타에서 온 작가 2명) △두 도시 간 교환 레지던시 프로그램(박민하 작가와 캐나다 퀘벡에서 온 외국 작가 2명) △큐레이터 초빙 프로그램(김정현 기획자와 호주에서 온 해외 기획자 2명) 등으로 다양했다.
토카스는 레지던시 외에도 전시, 공연, 워크숍 등 다양한 발표의 장이 되는 ‘TOKAS 혼고’도 운영 중이다. 토카스 혼고 단기 거주자까지 합하면 600여 명이 거쳐 갔다.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도쿄도 현대미술관이 있지만, 직접 연계 프로그램은 없고, 중견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하는 ‘도쿄 컨템포러리 아트 어워드’의 경우 도쿄도 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다. 2025년 2기(9~11월) 입주 작가 중에는 부산문화재단에서 파견(예술문화 국제기관 추천 프로그램)하는 김수정 작가 등이 포함돼 11명으로 예상된다.
콘도 과장은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해서 얻은 가장 큰 성과라면 참여 작가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디딤돌이 되는 점”이라면서 “예를 들면 2026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 대표로 선정된 에이 아라카와-나쉬는 초창기(국내제작교류프로그램)에 다녀갔고, 대만관 작가는 ‘두 도시 간 교류 사업 프로그램’으로 파견온 분이며, 독일관 대표는 ‘해외 크리에이터 초빙 프로그램’으로 토카스에 묵었던 분”이라고 전했다.
한편, 토카스 레지던시는 5명의 직원이 이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 중에는 미술 전공자 3명과 레지던시 코디네이터 유경험자 등이 포함된다. 예산은 인건비와 임대료를 제외한 프로그램 운영비로 약 3000만 엔(한화 약 3억 원)이 들어간다.
도쿄(일본)=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