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 2025-09-24 09:44:45
“Wunderbar!”(원더풀) “Es war TOP!”(최고였다)
부산이 자랑하는 오케스트라 ‘부산시립교향악단’이 23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의 가을 밤에 커다란 환호성을 불러일으켰다.
부산시향은 이날 베를린 필하모니 메인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무직페스트 베를린(Musikfest Berlin) 2025’ 폐막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로써 부산시향은 유럽 최대의 클래식 음악 축제인 무직페스트 베를린의 메인 무대에 오른 첫 아시아권 오케스트라로 기록됐다.
이날 공연에는 1800여 명의 관객이 몰려 부산시향의 성숙한 연주 기량을 지켜봤으며, 특히 올해 팔순을 맞은 재독작곡가 박영희 선생의 작품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빈리히 호프 무직페스트 예술감독은 공연에 앞서 관객들에게 박영희 선생을 직접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도 역시 박영희 선생의 ‘소리’와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연주였다. 부산시향은 자칫 어렵게 들릴 수 있는 현대음악을 작곡가의 의도대로 생생한 느낌을 살려 조율해 나갔고, 박영희 선생의 음악 세계를 다채롭고 능숙하게 표현해냈다.
‘소리’는 1980년 독일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제에서 초연돼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곡이다. 이어 연주된 ‘여인아, 왜 우느냐…’(2023년)는 성경에서 예수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건넸던 말에서 제목을 따왔다. 무직페스트 베를린 홈페이지는 이 곡에 대해 “심적 고통이 컸을 이들에게 차분하게 연민과 위로를 건네는 곡”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두 작품의 연주가 끝나자 임상범 주독일대사가 2층 좌석에 앉아있는 박영희 선생을 찾아가 직접 꽃다발을 전달했다. 이에 모든 관객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3분 넘는 시간 동안 박영희 선생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부산시향은 1부 공연에서 박영희 선생의 작품을 슬픔과 고통으로 표현했고,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를 재미 교포 2세 피아니스트 벤 킴과의 협연을 통해 분위기를 이어갔다. 2부에서는 올리비에 메시앙의 ‘승천: 4개의 교향적 명상’을 연주해 앞선 곡들의 엄숙함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전개했고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7번으로 공연의 마무리를 장식했다.
홍석원 지휘자는 공연을 마친 뒤 “박영희 선생님의 작품과 분위기가 맞아 떨어지는 메시앙의 ‘승천’을 제안한 (호프 감독의) 혜안이 놀라웠다”며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으로 작곡가 자신의 삶을 집약한 느낌이 있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서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 지휘자는 이어 “작곡은 상상의 소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베를린 필하모니홀에서는 박영희 선생의 음악적 메시지가 너무나 선명하게 깊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현지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부산 출신으로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에서 공연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김주혜 씨는 “유럽의 예술계에서 종사하는 부산 시민으로서 이런 큰 축제의 폐막 연주에 부산시향이 초대된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부산시향이 이제 부산 뿐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 단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이 끝난 뒤 무직페스트 측은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리셉션을 열어 부산시향 단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또 부산시 ‘2025 유라시아 도시외교단’ 사절 20여명이 베를린에서 전날 열린 부산 브랜드 홍보와 도시 교류 활성화를 위한 행사를 마치고 이날 공연을 관람하면서 힘을 보탰다.
부산시향은 오는 25일 뮌헨 헤라클레스홀에서 열리는 ‘뮌헨 BR 무지카 비바’ 축제 2025~2026 시즌 개막공연에서 ‘Zu Gast aus Korea’(한국에서 온 손님)라는 제목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베를린=박석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