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2025-10-22 09:51:40
“따라오지 말라 캤대이.” “갈 데가 없다 캤대이.” 할아버지 동만과 열 살 남짓 손자 풍도가 티격태격 기싸움을 벌인다. 혼자 외로이 늙어가는 괴팍 할아버지와 오갈 데 없는 사고뭉치 손자. 생사조차 모르고 살던 둘은 풍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원하지 않던 인생 동반자가 된다. 극작가 이만희 원작의 연극 ‘늙은 자전거’는 동만과 풍도가 만물상 자전거를 함께 타고 다니며 울다 웃는 여정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 갈등과 화해를 진솔하게 그려내며 진한 감동을 전하는 작품이다.
‘늙은 자전거’는 2020년 타계한 부산 연극계의 거목 전승환 연출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이다. 형 전성환(지난 8월 별세) 선생과 함께 극단 전위무대(현 공연예술전위)를 이끌며 부산 연극계를 대표한 전 연출가는 따뜻한 정이 넘치는 이만희의 작품을 좋아했고, 그의 대표작 ‘늙은 자전거’를 애정했다.
공연예술전위는 2013년 창단 50주년 기념공연 1탄으로 ‘늙은 자전거’를 선택했다. 당시 대표가 전승환 연출가였고, 권철과 길수경 배우가 각각 할아버지 동만과 손자 풍도로 출연했다. 케미가 유독 잘 맞았던 전승환, 권철, 길수경 조합은 2018년 부산에서 개최된 ‘늘푸른연극제’까지 여러 차례 ‘늙은 자전거’를 선보였다.
그리고 2년이 흐른 2020년 8월 전승환 연출가가 영면에 들었다. 당시 부산예술회관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한 배우가 김남석(부경대 교수) 연극 평론가의 추모사를 낭독됐다. “선생님의 뒷모습을 기억하면서 연극을 계속할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풍도’ 길수경이었다.
다시 전승환이 없는 5년이 흘렀다. 이번엔 배우 권철과 길수경이 전승환을 추억하는 무대를 마련한다. 공연예술전위 창단 50주년 기념공연에 함께 출연했고, 지금은 각각 다른 극단 대표로 활동하는 두 배우가 ‘고 전승환 선생님 5주기 추모공연’을 위해 뭉친 것이다. 작품은 당연히 ‘늙은 자전거’이다.
추모공연 기획은 고 전승환 연출가의 형 전성환 선생 장례식장에서 시작됐다. 당시 제30회 금샘예술축제 개막공연(10월 31일 오후 7시 30분 금정문화회관 은빛샘홀)으로 ‘늙은 자전거’를 준비하던 권철 배우는 고인의 부인에게 추모공연 의사를 전달했고, 부인이 감사히 뜻을 받아들이면서였다.
김문홍 연극 평론가는 배우들의 마음 씀씀이가 갸륵하고 고맙다고 평가했다. 김 평론가는 SNS 게시물을 통해 "선생은 갔지만, 후배들의 기억 속에서는 늘 살아 있다는 증거"라며 "그런 면에서 전승환 선생은 실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전승환이 사랑했던 연극 ‘늙은 자전거’는 이런 과정을 거쳐 고 전승환 선생님 5주기 추모공연, 금샘예술축제 개막공연, 극단 왁자지껄(대표 권철) 정기공연, 극단 봄날(대표 길수경) 창단공연이라는 네 가지 타이틀을 달고 관객을 만난다.
추모공연은 오는 24일부터 28일까지 부산 동구 가온아트홀 1관에서 열린다.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일요일 오후 4시. 공연 첫날 고 전승환 연출가의 부인과 자녀들이 관람할 계획이다. 연출 권철. 출연 권철, 길수경, 박호천, 박정은. 관람료 3만 원. 예매 네이버, 놀티켓. 문의 010-9677-8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