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 | 2025-10-21 10:07:21
정부가 ‘관광소비 100조 원, 방한 관광객 3000만 명’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해외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결제 시스템은 낙제점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매장이나 식당, 지하철 등에서 결제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비접촉식 결제(EMV) 방식을 대폭 확대하는 등 개선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정연욱 의원(부산 수영구)은 “한류는 전 세계를 움직이는데, 한국은 관광객 지갑부터 막는다. 관심은 한류가 끌어왔지만, 불편은 한국이 만들고 있다”며 “목표만 외칠 게 아니라 기본부터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연욱 의원실이 공개한 문화체육관광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외국인이 한국에서 가장 불편하다고 답한 항목은 교통(19.7%), 음식(13.5%), 언어(13.3%), 방문지 정보(11.7%) 등이었다.
가장 큰 문제로는 결제가 지목됐다. 전 세계 오프라인 결제의 74%가 비접촉식 결제(EMV) 방식인데, 영국·싱가포르·호주는 EMV 방식이 90%가 넘는다. 반면에 한국은 10% 수준에 그친다. 애플페이·구글페이는 매장에서 인식되지 않거나 오류가 반복되기 십상이다.
정 의원은 “한강에서 치킨 한 마리도 시켜 먹지 못하는 나라가 현실”이라며 “이건 편의 수준 문제가 아니라 소비 자체가 막히는 구조”라고도 했다. 이어 “100조 원 소비를 말하면서 기본 결제도 안 되는 나라”라고 꼬집었다.
교통 불편도 반복되는 민원이다. 티머니 카드는 해외 신용카드로 충전이 불가능하고, 아이폰 이용자는 모바일 티머니를 사용할 수 없다. 지하철 무인 발권기와 시외버스 예약 시스템에서도 해외 카드 결제 오류가 잦다.
이에 대해 정 의원은 “런던은 2012년, 뉴욕은 2019년부터 해외 카드 한 장으로 지하철을 탈 수 있는데, 한국은 아직 20년 전 방식에 묶여 있다”고 지적했다. “K콘텐츠는 국경을 넘었지만 K서비스는 국경 안에 갇혀 있다”는 비판도 더했다. 배달앱은 켤 수는 있는데, 주문은 못 하고, 교통카드는 사도 충전을 못 한다. 이게 어떻게 관광 100조 시대냐는 것이다.
정 의원은 “관광공사가 할 일은 홍보 포스터 만드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라며 “오고 싶고,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나라가 되려면 한류보다 먼저 (결제 시스템 등) 불편부터 치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 의원은 전 세계가 K푸드를 찾는데 예산부터 삭감하는 정부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세계가 K푸드에 열광하는데, 정부는 가장 기본인 먹거리 관광 예산부터 줄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3000만 관광객 시대’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한국관광공사의 ‘2024 외래객 조사’를 보면, 외국인 관광객의 80.3%가 방한 활동으로 ‘식도락 관광’을 꼽았다. 쇼핑(80.2%)보다 높은 수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 국민여행조사’에서도 내국인의 국내여행 활동 중 가장 많은 응답은 자연경관 감상이었지만, 두 번째가 음식관광이었다. 하지만, 관광공사의 전체 정부 지원 예산은 2023년 4140억 원에서 2025년 3680억 원으로 약 11% 줄었고, 같은 기간 음식관광 관련 예산은 20억 원에서 12억 8000만 원으로 36%나 삭감됐다. 정 의원은 “관광공사는 매년 ‘음식관광 활성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홍보 행사를 반복하고 있다. 외래객의 체험이나 실제 소비로 연결되는 구조는 여전히 부족한데, 예산은 오히려 줄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