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5-03-10 15:11:37
대한민국 땅이지만, 제주는 확연히 다른 구석이 많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바다와 하늘, 외국어 같은 사투리, 신비한 설화, 집단 학살의 비극이 있는 4·3까지 ‘특별시’라는 호칭처럼 참 특별하다. 제주 토박이 김산 작가는 줄곧 제주에서만 살았다. 제주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석사까지 끝낸 후 전업 작가로 제주를 그리고 있다.
제주와 서울에서만 여러 개인전을 연 김 작가는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로 로터스 갤러리에서 부산 첫 개인전 ‘Dear My Deer’를 열고 있다. 로터스 갤러리 권효선 대표가 우연히 김 작가 그림을 보고 그날 바로 제주 작업실을 찾아가 전시 협의를 할 정도로 반했다고 한다.
사실 제주 풍경을 그리는 작가는 많다. 정기적으로 스케치 여행을 가는 작가도 있고, 레지던시를 이용하기도 한다. 아예 제주에 집을 구해 정착한 작가도 여럿 있다. 하지만 김 작가의 제주 그림은 다른 작가는 흉내 낼 수없는 고유한 매력이 있다. 비평가들은 “김산 작가의 제주 풍경은 단순히 보이는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제주 역사와 문화, 삶이 녹아있는 ‘사회적 풍경’이다”라고 그 매력을 설명한다.
작가는 “예술은 한 사회를 연구하고 관찰하며 표현하는 삶의 연속적 행위이다. 제주는 본토와 다른 특수한 삶의 공동체와 사회문화, 고난의 역사가 있다. 제주 사람들의 생활과 그 주변에는 갖가지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원시 자연과 지역 모습이 그것이다”라고 말한다.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제주의 역사와 고난, 삶을 담은 장소를 그린다는 뜻이다.
김 작가의 풍경화는 대부분 원시 자연이 떠오르는 곶자왈이다. 도청의 특별 허가를 받아 관광객은 들어가지 못하는 곶자왈의 깊은 속살까지 보여준다. 사실 작가의 그림 속 곶자왈은 작가의 기억, 상상이 가미된 풍경이다. 앞서 평론가들이 언급했던 ‘사회적 풍경’이며, 작가의 심상과 관점이 들어간 재현 풍경이기도 하다.
아크릴과 유화 물감을 섞어 쓰지만, 작가는 단색화라고 불릴 정도로 거의 초록색 한 가지만 사용해 풍경을 완성한다. 수묵화처럼 담담한 초록의 세계에 다른 색을 가진 대상이 하나 있다. 흰색의 사슴이다. 제주 설화에 사슴이 1000년을 살면 푸른 빛을 띠고, 거기서 100년을 더 살면 흰빛이 된다는 내용이 있다. 흰색 사슴은 작가 자신을 대변하기도 하고, 대자연에 속한 인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소중한 존재가 무사하길 바라는 염원, 자신들의 터전인 제주, 더 나아가 자연을 수호하고자 하는 마음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신작으로만 채운 이번 전시에선 이전 작품보다 과감해진 면모를 볼 수 있다. 물감을 흩뿌리거나 반짝이는 젤을 발라 입체감을 더했고, 초현실적인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발 열기 속에 빠르게 사라지는 아름다운 제주를 지키려는 작가의 호소이기도 하다. 이 전시는 29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