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2025-02-20 17:56:27
“우리는 채우는 데 익숙하지만, 때로는 덜어낼 때 본질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여백과 절제의 미학입니다.”
지난 13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부산일보 해양CEO아카데미 14강에서 홍푸르메 작가는 ‘비움의 미학’을 거듭 강조했다. 동양화가이자 ‘힐링 아티스트’로 불리는 그는 국내외에서 34회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300회 이상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번 강연에서 그는 미술과 인생의 접점을 짚으며 ‘비우는 것이 곧 채우는 것(Less is more)’이라는 철학을 소개했다.
먼저 홍 작가는 매화를 중심으로 동양 미술의 흐름을 짚었다. 그는 “매화는 조선 시대부터 한국화에서 중요한 소재였다. 특히 문인화에서는 절제된 표현과 비움의 미학이 강조됐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 5만 원권에 그려진 매화 그림이 바로 조선 시대 화가 어몽룡임을 언급하며 매화가 지닌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설명했다.
또한 김홍도의 ‘매화도’와 장승업의 ‘매화 병풍’도 언급하며 옛 예술가들이 매화에 매료된 이유를 설명했다. 홍 작가는 “매화는 차가운 겨울을 견디고 봄을 알리는 꽃”이라며 “시련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품는 상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소개하며 우리 또한 비움을 통해 삶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는 철학을 전달했다. 세한도는 스승을 향한 제자의 변치 않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기존 김정희의 섬세한 필법 대신, 과감하고 거친 붓질로 겨울을 표현했다.
홍 작가는 “김정희는 최고의 학자이자 예술가였지만, 61세에 유배를 당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의 작품은 유배 시절에 더욱 깊어졌고, 결국 ‘세한도’라는 걸작이 탄생했다”면서 “김정희가 모든 걸 내려놓고 비우면서도 지식을 채우고 내면을 단단히 했듯이, 우리도 비움을 통해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 미술에서도 비움의 개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양에서는 색채와 구성이 강조되지만, 동양화는 여백을 통해 더 깊은 감정을 전달한다”며 자신의 작품 활동을 소개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포스터를 디자인한 경험을 언급하며 “한 점의 그림이 도시의 얼굴이 될 수 있다. 동양화의 여백과 절제미는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홍 작가는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자신의 작품이 전시된 바 있다. 그는 이 같은 경험을 소개하며 “한국의 전통 미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세계에 알리고 싶다. 동양화가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깨고, 동서양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홍 작가는 “CEO든 예술가든, 어떤 위치에 있든 간에 자신을 돌아보는 비움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매화차 한 잔을 마시며 계절을 느끼거나, 자연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라. 그런 작은 여유가 결국 더 깊은 통찰과 기회를 만든다”면서 “삶 속에서 비움을 실천할 때 우리는 더 넓고 깊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