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카페에 미사곡 초연 성당도…볼프강 흔적, 아직 살아 숨 쉬네 [세상에이런여행] ㉒

<모차르트in오스트리아 ④ 잘츠부르크(하)>

볼프강 단골로 찾던 찻집 카페 토마셀리
‘아이네 클라이네’에 젖어 달콤 시간여행
퓌르스트 모차르트 쿠겔 맛엔 지갑 선뜻

축제 무대 호프슈탈가세는 ‘모차르트거리’
어린 볼프강 흔적 남은 각종 시설 즐비해

독일어권서 최장 역사 장크트페터 수도원
모차르트 ‘대미사곡 C단조 등 초연한 성소
아버지 홀로 지킨 난네를 공동묘지에 안식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2024-07-02 07:00:00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음악이 귓가에 흐르는 환청을 느끼면서 ‘옛 시장’이라는 뜻인 알터마르크트 광장으로 향한다. 이곳은 잘츠부르크 대성당에서 게트라이데가세 사이를 오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하루 종일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모차르트 여행을 진행하면서 그의 음악과 인생을 살펴보느라 잘츠부르크 곳곳을 다니다 보니 피곤하다. 이제는 커피 한 잔과 짧은 휴식이 필요한 시간이다. 알터마르크트 광장에 간 것은 ‘모차르트 초콜릿’을 사고 ‘모차르트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잠시 쉬기 위해서다.

목적지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찻집인 ‘카페 토마셀리’와 모차르트 초콜릿 원조 제품을 판매하는 ‘카페 콘디토레이 퓌르스트’다.

모차르트의 단골 찻집이었던 카페 토마셀리 전경. 남태우 기자 모차르트의 단골 찻집이었던 카페 토마셀리 전경. 남태우 기자

■카페 토마셀리와 카페 퓌르스트

다른 카페를 놔두고 굳이 카페 토마셀리로 간 것은 이곳이 모차르트의 단골 카페였기 때문이다. 그가 자주 들른 이유는 간단했다. 차가 맛있는 데다 그의 집이 있던 게트라이데가세 9번지에서 가까웠다.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5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모차르트는 카페 토마셀리에 가면 늘 아몬드 밀크를 주문했다. 가끔 아침 식사를 들기도 했다. 아버지의 반대를 뿌리치고 혼자 빈으로 떠났다가 1783년 아버지 허락 없이 결혼한 아내 콘스탄체 베버를 데리고 잘츠부르크로 잠시 돌아갔을 때에도 아내와 함께 카페를 찾았다.

콘스탄체는 1791년 모차르트와 사별한 뒤 시누이가 살던 잘츠부르크로 이사를 갔다. 그녀는 모차르트의 추억이 서린 카페 토마셀리 2층에 세를 얻어 두 번째 남편과 함께 살다 세상을 떠났다.

카페 토마셀리에 들어가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것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가구, 크리스탈 샹들리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직원,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디저트를 운반하는 카트, 나무 가판대에 놓인 신문 등은 200여 년 전 중상류층 인사들이 즐겨 찾던 시절의 모습 그대로다. 관광객이 너무 많이 입장해 가끔 소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우아한 분위기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에 저장한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소야곡)’를 틀어본다. 모차르트가 1781년 빈에서 작곡한 음악이지만 잘츠부르크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려 이곳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곡이다. 입안을 즐겁게 해주는 고소한 아몬드 밀크와 귀를 달콤하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음악이 마치 협연을 펼치는 느낌이다.

한 여행객이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은 카페 퓌르스트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남태우 기자 한 여행객이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은 카페 퓌르스트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남태우 기자

카페 토마셀리에서 아몬드 밀크를 다 마신 뒤 바로 맞은편에 있는 초콜릿 가게 ‘카페 퓌르스트’로 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오스트리아에서 널리 판매되는 모차르트 초콜릿, 즉 ‘모차르트 쿠겔’의 원조 가게다. 카페의 첫 주인은 ‘모차르트 탄생 100주년’이던 1856년에 태어난 폴 퓌르스트였다. 그는 1891년 ‘모차르트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둥근 공 모양의 초콜릿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모차르트 쿠겔이었다.

퓌르스트의 모차르트 쿠겔이 큰 인기를 얻자 다른 곳에서도 우후죽순처럼 모차르트 쿠겔이라는 이름을 단 제품을 내놓았다. 지금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모차르트 쿠겔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제품이 무려 13개나 생산된다. 퓌르스트가 상표권을 등록하지 않은 탓에 아무나 똑같은 이름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어디에서나 모차르트 쿠겔을 볼 수 있다. 기념품 가게는 물론 제과점이나 초콜릿 전문점에도 있다. 달콤한 초콜릿 포장지에 새겨진 모차르트의 얼굴을 보고 지갑을 열지 않을 관광객은 하나도 없다.

모차르트 얼굴을 새긴 파란색 포장지가 특징인 카페 퓌르스트의 ‘모차르트 쿠겔’. 남태우 기자 모차르트 얼굴을 새긴 파란색 포장지가 특징인 카페 퓌르스트의 ‘모차르트 쿠겔’. 남태우 기자

■호프슈탈가세

카페 토마셀리에서 맛있는 아몬드 밀크를 마시고 퓌르스트에서 산 초콜릿을 입에 문 채 다시 거리로 나선다. 인근의 잘츠부르크대학교 법학부 건물을 지나면 ‘대학교 광장’이 나온다. 광장 인근에는 잘츠부르크대학교 관련 시설 천지다. 대학교 성당, 대학교 도서관, 대학교 강당 등이다.

광장 끝까지 가면 그야말로 ‘모차르트 거리’가 나타난다. 거리의 실제 이름은 호프슈탈가세이지만 ‘모차르트거리’라고 불러도 지나친 것은 아니다. 모차르트를 핵심으로 하는 잘츠부르크 음악축제 공연장인 ‘그로세스 페스트슈필하우스’와 ‘모차르트 회관’ 등이 이곳에 모였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대학교 대강당은 모차르트가 다섯 살 때 학예회에 무용수로 출연한 곳이다. 열두 살 때에는 역시 이 대강당에서 자작 오페라 ‘아폴로와 히아킨투스’를 초연했다.

매년 잘츠부르크 음악축제가 열리는 호프슈탈가세 전경. 남태우 기자 매년 잘츠부르크 음악축제가 열리는 호프슈탈가세 전경. 남태우 기자

대강당은 2001년 미국 기업인 도널드 칸 부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수리 작업을 거쳐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던 2006년 재개장했다. 재개장 기념 연주회 무대에 오른 곡은 ‘아폴로와 히아킨투스’였다.

해마다 여름철 잘츠부르크 대축제가 열리면 호프슈탈가세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빈다. 미리 축제를 염두에 두고 일정을 잡아 표를 예매하지 않는다면 각종 공연장에 들어갈 입장권 한 장 구하기도 쉽지 않다. 사정이 안 돼 음악축제 공연장이나 대강당에서 음악을 들을 수 없더라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거리를 한번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하다. 모차르트가 이곳에서 살아 숨 쉰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가 미사곡 두 곡을 초연한 장크트페터 수도원·성당 전경. 남태우 기자 모차르트가 미사곡 두 곡을 초연한 장크트페터 수도원·성당 전경. 남태우 기자

■장크트페터 수도원·성당

호프슈탈가세 끝까지 걸어가면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성소인 ‘장크트페터 수도원·성당’이 나온다.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독일어권 지역을 통틀어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5세기에 만든 작은 성당이 있었는데 잘츠부르크를 재건한 성 루프레흐트가 8세기 초 새로 수도원 겸 성당을 건설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잘츠부르크의 많은 명소처럼 이곳도 모차르트와 직접적으로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모차르트는 이곳에서 1769년 ‘도미니쿠스 미사곡’을, 1783년 ‘대미사곡 C단조’를 초연했다.

‘도미니쿠스 미사곡’은 신부가 된 동네 형 카예탄의 첫 미사 집전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카예탄은 모차르트가 살던 게트라이데가세 9번지 하겐나우어하우스의 집주인이던 요한 로렌츠 하겐나우어의 아들이었고, 도미니쿠스는 그의 세례명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모차르트와 친해 서로 집을 오가며 형제처럼 함께 놀기도 했다.

‘도미니쿠스 미사곡’은 종교음악이지만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곡이다. 카예탄은 신부가 되기 전 오페라를 좋아했는데 모차르트는 이 점을 고려해 미사곡을 일부러 축제 음악처럼 작곡한 것이었다.

‘대미사곡 C단조’는 1781년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빈으로 떠났다가 역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모차르트가 빈에 간 이후 처음 귀향해 아버지에게 사죄하는 뜻을 담은 곡이었다. 이날 행사는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에서 진행한 마지막 연주회였다. 이 곡은 나중에 유럽의 여러 국왕, 황제 대관식에 쓰여 ‘대관 미사곡’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장크트페터 성당 내부 전경. 남태우 기자 장크트페터 성당 내부 전경. 남태우 기자

장크트페터 수도원·성당에는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가 있다.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를도 이곳에 묻혔다. 장크트길겐으로 시집을 갔던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잘츠부르크로 돌아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아버지마저 별세하자 혼자 장례식을 치르고 외롭게 살다 눈을 감았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는커녕 단 한 번도 귀향하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누나를 찾아가 위로한 적도 없었다. 세상을 떠날 무렵 난네를에게 모차르트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장크트페터 수도원 공동묘지는 뮤지컬 영화 ‘사운드오브뮤직’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다. 합창대회를 마친 트랩 가족은 잘츠부르크에서 탈출하다 나치에 쫓길 때 공동묘지를 지나가는데, 영화를 촬영한 장소가 바로 장크트페터 수도원 공동묘지였다.

장크트페터 수도원·성당에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 있다. 1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슈티프츠켈러 장크트페터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이곳에서 가끔 식사를 했다. 때로는 가족과 함께, 때로는 지인과 함께 식당을 방문했다. 난네를이 1783년 10월에 쓴 일기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아버지는 슈티프츠켈러에서 친구와 점심을 들었다. 폭우가 내렸다.’

슈티프츠켈러에서는 매일 저녁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가 진행된다. 음식을 즐기면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 프로그램이다. 식사는 연주회 중간 휴식기에 제공된다. 오스트리아 전통의상을 입은 직원이 다양한 음식을 대접한다. 잘츠부르크에서 하룻밤을 묵어간다면 호텔 로비 직원에게 부탁해 예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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