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2025-04-08 09:50:01
벚꽃잎이 날리는 계절, 경주시 노서동 고분군 공원 옆 부지에 새로운 미술관 한 곳이 문을 열었다.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오아르미술관이다. 8일부터 일반 관람객도 받기 시작했다. ‘오아르’(OAR)는 ‘오늘 만나는 아름다운’(Beauty you meet Today)이라는 뜻으로, 경주 출신의 개인 컬렉터 김문호 관장이 2005년부터 수집한 개인 소장품 약 600점을 가지고 설립한 사립 미술관이다. 100% 사비를 털었다는 것도 주목된다. 부산에서 승용차로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거리인 데다 경주 핫플레이스 ‘황리단길’과도 멀지 않아서 벌써 화제다.
승용차로 부산에서 출발해 오아르미술관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외관은 물론이고, 장소가 영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 반전이다. 경주답게, ‘고분을 품은’ 미술관이라는 게 실감 난다. 닫힌 창으로 상징되는 옛 모텔 자리에 미술관이 지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지난 1일 개관식에서 만난 오아르미술관 설계자 유현준(홍익대 교수·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는 “능(대릉원 바로 옆에 위치함) 바로 옆에 미술관이 있는 만큼 능이 갖고 있는 좋은 에너지를 미술관이 담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콘셉트였다”면서 “능과 경쟁하는 건축물이 되어선 안 되고, 배경으로 사라져야 하는 건축물 개념으로 설계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해서 신라 고분을 하나의 작품처럼 담을 수 있는 미술관이 탄생했다.
유 건축가도 언급했지만, 실제로도 미술관을 바라보는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미술관 정면 외관에서 유리창에 반사되는 모습이다. 미술관 전면 창은 가로 30m, 세로 12m로 되어 있는데 바깥에선 안이 잘 보이지 않는 반사율이 높이 유리를 사용해 고분군 풍경이 사진처럼 반사된다. 두 번째는 미술관 안으로 들어와서 바깥을 바라보는 풍광이다. 창틀 없이 유리로만 만들어진 유리창은 하나의 거대한 파노라마 액자가 되어 대릉원을 프레임 한다. 세 번째는 1층 건물 내부 카페 바 뒷면에 설치된 스테인리스 스틸 거울 면에 반사되는 대릉원 풍경이다. 이 세 가지 모습을 다 본 뒤 전시장 작품을 감상하고 옥상(루프탑 전망대)에 올라서면 다시 한번 대릉원을 품은 경주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개관전에도 제법 힘을 실었다. 층별로 준비했다. 미술관 건물 1층은 ‘오아르 커피’ 카페 시설과 제1전시실이 있다. 관장 소장품 중 10여 점의 현대미술 작품으로 구성한 ‘오아르 컬렉션’ 소장품 기획전(4월 23일까지)을 1차로 선보인다. 2층 제2전시실은 메인 전시 공간으로 글로벌 미술계가 주목하는 일본의 에가미 에츠 신작 17점을 국내 최초 미술관에서 공개하는 ‘지구의 울림’(9월 21일까지)이 열린다. 지하 1층 제3전시실에는 세계가 주목하는 미디어아트 작가 전준호&문경원이 선보인 ‘팬텀 가든’(2026년 3월 31일까지)을 전시한다.
에가미 에츠(31)는 일본 지바현 출생으로, 독일 오펜바흐 조형예술대(HFG)와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공부하고, 젊은 작가의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는 ‘VOCA 2020’에 참가했다. 2020년과 2021년엔 포브스가 선정한 ‘세상을 바꾸고 있는 30세 이하의 젊은 리더 30인’에 뽑힐 만큼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는 전 세계 젊은이를 열광시켰던 과거와 현재의 스타들, 예를 들면 마이클 잭슨, 비틀즈, K팝 아티스트 등의 초상을 추상적인 화법으로 풀어낸 작품이 전시된다. K팝 아티스트 가운데는 BTS 멤버 초상화도 2점 포함돼 눈길을 끈다.
전준호 & 문경원 듀오 작가는 2009년부터 따로, 또 같이 활동하는 세계적인 작가이다. 대표작으로 ‘미지에서 온 소식’(2012)이 있으며, 정치·경제적 모순, 역사적 갈등, 기후변화 등 인류가 직면한 위기 속에서 예술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질문하고 탐구하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독일 카셀 도큐멘타(2012),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2015), 스위스 미그로스 현대미술관(2015), 영국 데이트 리버풀(2018-2019), 한국 국립현대미술관(2022),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2022) 등에 초대돼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로 영상, 설치, 아카이브, 출판물 등을 제작하고 전시했다. 이들은 올가을에 크랭크인 할 장편영화 ‘아트페어’(가제)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개관식에서 만난 전준호는 “올해는 큰 전시는 다 고사하고, 9월에 상업영화를 찍는다”며 “그동안 열 몇 편의 단편영화를 찍었고, 이번 장편은 4년여에 걸쳐 준비한 극영화”라고 밝혔다. 시나리오 작업은 거의 마쳤고, 최근 투자 문제가 해결돼 캐스팅 중이며, 9월엔 공동 연출로, 촬영에 들어갈 것 같다고 전했다.
김문호 관장은 “오아르라는 이름처럼 동시대의 아름다운 예술을 향유하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며 “경주시가 간직하고 있는 문화적 전통과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현대 예술의 아름다운 조화를 목표로 설계한 만큼 경주의 새로운 예술 랜드마크로 잘 운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미술관은 성인 8000원, 청소년·어린이 6000원의 관람료를 받는다. 매주 화요일이 휴관일이며, 휴관일을 제외한 월~일요일 오전 11시~오후 8시 운영한다.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은 휴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