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2025-04-13 15:10:46
제43회 부산연극제가 막바지로 향하며 열기를 더하고 있다. 지난 3일 막이 오른 후 공연이 열리는 소극장마다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부산연극제의 흥행 요소에는 공연이 끝난 후 열리는 관객과의 대화(GV)가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다.
‘섹션 부산’ 첫 상연작인 극단 따뜻한 사람의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 무대가 열린 지난 8일 부산진구 부암동 백양문화예술회관 소극장. 80분의 공연이 끝난 오후 9시. 대학가요제가 낳은 명곡 ‘연극이 끝난 후’ 노랫말처럼 빈 객석엔 조명이 꺼진 무대를 혼자 바라보는 배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절반 이상의 객석은 여전히 관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원형으로 세팅된 무대엔 이날 연기를 펼친 배우 14명과 연출가가 자리했다.
이미 커튼콜까지 마무리됐지만 이날 연극의 두 번째 무대인 GV가 이제 막 열릴 참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관객과 만난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는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뒤틀린 가족사를 통해 시대적 아픔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거리를 던지는 작품이다. 류수현 극작가는 이 작품으로 제10회 김문홍희곡상을 받았다.
GV 사회를 맡은 부산연극협회 최용혁 예술감독이 첫 질문으로 분위기를 띄우자 곧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이 쏟아졌다. “제목에 나오는 손과 부채의 연관성은?” “징용과 위안부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가 가지는 의미 이상의 메시지가 있다면.” “극 중 소녀들이 부르던 산토끼 노래의 의미는?”
답변 도중 연신 눈물을 쏟아 낸 배우에겐 격려의 박수가 이어지기도 했다. 커튼콜 때 흘린 눈물의 의미에 대한 답변이었는데, 마이크를 든 이경진 배우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너무 많이 잊고 산 사람으로서, 이 작품의 배역을 맡을 자격이 있나 싶은 생각에 눈물이 계속 났다”라고 말해 객석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극단 따뜻한사람 허석민 대표는 “(우리 역사에는)일제강점기처럼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부조리한 역사를 잊고 타협하는 순간 우리는 진짜 피해자가 된다”라는 말로 연출 의도를 밝혔다. 허 대표는 이어 “역사나 정치 문제를 경연 작품으로 선택하는 건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우리는 청년 극단이니까 도전할 수 있었고, 관객들 역시 지지와 공감을 해주실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오후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열린 ‘스테이지 섹션’의 ‘어둠상자’ GV 분위기도 이에 못지않았다. 두 차례나 질문을 던진 이정혜(63) 씨는 “연극을 보며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지 궁금했는데 연출가의 답변을 통해 말끔히 해소됐다”라며 “요즘 가장 중요한 게 소통인데, 연극도 궁금증을 해소하고 피드백을 받는 GV를 마쳐야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어둠상자’는 7월 인천에서 개최되는 대한민국연극제에 부산 대표로 참가하는 작품이다.
이번 제43회 부산연극제에서는 GV가 모두 열세 차례 열린다. 앞서 언급한 두 차례를 포함해 아홉 차례는 이미 진행됐다. 14일부터는 소극장 6번출구 무대에 오르는 ‘스테이지 섹션’의 ‘워 아이니?’를 시작으로 18일 백양문화예술회관의 ‘꽃피는 정거장’까지 네 차례 GV가 차례로 열린다.
부산연극협회는 GV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차동희 사무처장은 “지난해까지 선택적으로 몇몇 작품만 하다 올해에는 무대에 오르는 전 작품을 대상으로 GV를 하고 있다”며 “GV가 연극제 흥행과 내실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협회 최용혁 예술감독은 GV를 ‘연극 관람의 또 다른 재미’라고 규정했다. 최 예술감독은 “영화와 달리 연극은 일회성으로 사라지는 예술이다 보니 현장의 분위기나 공기, 객석과 무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순간을 현장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다”며 “이런 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GV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43회 부산연극제는 오는 20일 오후 5시 부산예술회관에서 열리는 폐막식 및 시상식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