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5-03-04 15:09:10
전시를 소개하는 글을 쓰다 보니 주변에서 “작품에 대한 감상을 잘 표현할 수 있어 부러워요”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럴 땐 민망해진다.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미술 이론과 미술계 경향을 해석하는 평론가적 역량도 없다. 오히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전시 취재를 하러 가기 전 사전 학습을 충분히 하는 편이다. 왜 이 작가를 선택했는지, 이런 전시의 기획 의도를 큐레이터에게 미리 묻고 전시 초대 글, 설명글을 여러 번 읽는다. 작가의 이전 전시 평론을 일일이 찾아서 이 작가가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담는지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전시를 본 후 기사를 쓸 때는 앞서 공부했던 내용은 거의 없고 전시장에서 직관적으로 느낀 감정들을 솔직히 나열하게 된다. 사람들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잘 표현한다고 느낀 건 기존 신문 기사와 다르게 솔직하고 쉬운 단어로 감정을 이야기하기 때문이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 메종드카린에서 열리는 ‘달빛정원’ 전시를 보며 앞서 열거한 생각이 떠올랐다. 김상열 회화 작가와 신철 도예 작가 2인전으로 구성한 이 전시는 굉장히 감성적이다. 전시 제목인 ‘달빛정원’은 이 전시의 느낌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단어이다. 보름달이 뜬 밤, 조용한 정원을 산책한다고 상상해보자(물론 이 정원은 안전한 곳이다). 그때 느껴지는 부드럽고 포근하고 편안한 기분, 메종드카린의 현재 전시가 주는 감동이 그렇다.
김상열 작가는 나뭇가지, 잎 등의 식물 이미지를 활용한 ‘시크릿 가든’시리즈로 주목받았고, 이번에는 산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윈드 가든’ 신작을 들고 왔다. 난로를 때고 남은 재와 미지엄(겔 같은 미술 재료)을 섞어 캔버스에 발라 바탕의 질감을 만든 후 물감, 에어 브러시로 색을 입힌다. 작가의 산은 마치 파동을 그린 듯 산줄기의 형태만 드러낸다. 서로 다른 농도의 색면이 중첩돼 산의 형태와 색조가 부드럽게 변주된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 공간의 무한성을 상징하기 위해 파동 같은 산 형태가 나왔다. 작품을 보며 자연 속에서 명상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 좋겠다”라고 설명했다.
카린 갤러리 바닥은 신철 작가의 달항아리가 마치 아담한 정원에 드문드문 핀 꽃처럼 놓여있다. 큐레이터는 갤러리 바닥에 작은 돌을 쌓아서 정원 일부를 재현했다. 신 작가의 항아리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배경과 섞였다. 일반적으로 도예 전시는 좌대 혹은 탁자 위에 도자기가 놓이는데 좀 더 다른 느낌으로 관객에게 다가서고 싶어 색다른 전시 배치를 시도했다.
신 작가는 40여 년간 흙과 불을 탐구했고 오랜 세월을 버티며 국내에서 달항아리를 만드는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미술 컬렉터들은 작가마다 달항아리의 선과 색이 확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신 작가는 평생 장작가마로만 작업했다. 100개를 만들면 겨우 1~2개 정도만 건질 정도로 굉장히 어려운 길이지만, 자신만의 분명한 미의식에 따라 완성도 높은 달항아리만을 고집한다.
신 작가는 “달항아리를 만들 때마다, 사유와 성찰을 통해 선조의 미의식에 접근해 가고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관통하는 메시지인 ‘겉치레에 매몰되지 않고 순수하고 큰 마음으로 서로를 품는다’라는 문장을 늘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 전시는 9일까지 열린다. 메종드카린은 순수미술부터 공예 인테리어까지 모두 다루었던 알앤씨갤러리의 새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