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훈 기자 jch@busan.com | 2025-03-06 17:20:36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6일 부산 방문에서도 지역 최대 현안인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조성 특별법(이하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 KDB산업은행 이전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박형준 부산시장의 거듭된 협조 요청에도 ‘검토하겠다’는 단 한 마디로 넘겼다. 박 시장이 “저를 무시했다는 생각을 넘어 부산 시민들을 냉대한 것”이라고 격앙할 정도였다. 이 정도면 의도적인 무시 전략으로 보인다. 두 현안 모두 21대 국회 시절 부산 여야가 ‘지역균형발전 법안’이라며 합심해 추진했지만, 이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그 동안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하지 않았다. 대신 지난달 불쑥 끄집어낸 ‘북극항로 개척’이라는 ‘이재명표’ 부산 공약을 밀어부칠 기세다. 현안 타결 시 정치적 이익을 고려한 정략적 접근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22년 대선 당시 현 여권이 산은 부산 이전 공약을 발표할 때만 해도 민주당이 3년 동안 이를 반대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공공기관 이전을 통한 지역균형발전은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민주당이 일관되게 추진한 정책이었고, 당시 이재명 대선후보도 공공기관 2차 이전을 공약한 바 있다. 산은 부산 이전 역시 민주당이 검토했던 2차 이전안에 담겨있는 내용이다. 이에 부울경 민주당 의원들도 당 지도부에 산은법 개정안 처리를 호소한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산은 이전은 2차 공공기관 이전 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논리로 3년째 산은법 개정안 처리를 막고 있다. 여기에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산은이 위치한 서울 여의도가 지역구인 김민석 의원은 당 지도부 회의에서도 공개적으로 반대 주장을 해왔다.
이 대표는 이날 부산 지역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도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면서 산은 역시 함께 이전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공기관 2차 이전은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현 정부까지 추진 의사를 밝혔지만, 정치적 부담 등을 이유로 실행하지 않았다. 공공기관 2차 이전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는 산은 이전을 무기한 지연시키겠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여권 관계자는 “이 대표가 2차 공공기관 이전에 진심이라면 산은을 선도 이전해 전체적인 이전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여권발 공약이기 때문에 하지 않을 명분을 억지로 만들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부산 여야가 합심해 발의한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에 대해 사실상 ‘태업’을 벌이는 이유는 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이날 “부산만 (특별법을)해주면 타 지역에도 영향을 미친다”면서 ‘부울경 메가시티’ 추진이 당론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비수도권 광역지자체의 권한과 위상을 강화하는 특별법은 이미 제주도, 강원, 전북에서 ‘특별자치도’ 형태로 이뤄진 바 있다.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은 부산의 장점인 물류, 금융 분야에서 타 특별시·도와 비슷한 정도의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이 대표가 언급한 북극항로 역시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에 담을 수 있다는 게 부산시의 입장이기도 하다. 반면 부울경 메가시티의 경우, 부산의 찬성에도 경남, 울산이 반대하면서 좌초된 바 있다. 현 상황에서 실행 가능성이 없는 메가시티를 ‘대체안’으로 제시하는 것 역시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처리를 회피하기 위한 억지 논리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대표가 ‘검토하겠다’는 단 한 마디 무성의한 답변으로 ‘천막농성’까지 한 부산시장의 호소와 160만 명에 달하는 시민 서명을 간단히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자, 부산 민주당 내에서도 ‘지역 민심을 너무 모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의 본산 격인 부산 야권이 최근 친명(친이재명) 체제로 급격히 재편되면서 이 대표와 부산의 소통 채널이 좁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산 민주당의 한 인사는 “이 대표가 모처럼 부산 방문을 계획했을 때에는 당연히 두 현안에 대해 어느 정도 성의 있는 답을 준비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면서 “지역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인사들이 이 대표 주변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부산 국민의힘 김도읍·이헌승·김희정·박수영·이성권·김대식·정성국·박성훈·곽규택·조승환 의원 등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가지회견을 열어 “부산 최대 현안은 북극항로 개척이 아닌 조속한 산은 부산 이전과 글로벌 특별법 제정”이라며 “이번에도 이 대표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물쩍 넘어갈 생각이라면 부산 시민의 엄중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