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5-01-20 14:13:23
부산 해운대구 갤러리 서린 스페이스에선 요즘 눈길을 끄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목묵지운’(木墨地韻)이라는 전시 제목은 나무와 먹, 땅과 운치(울림)라는 네 개의 한자어를 붙여서 만들었다. 어떤 전시인지 힌트를 주는 듯하다.
이 전시는 한지와 먹을 사용하는 유현 작가와 나무를 재료로 가구와 설치 작업을 하는 왕현민 작가의 2인전으로 구성했다. 갤러리 서린 스페이스의 신민교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나무에서 시작했다. 대지의 양분과 맑은 이슬, 따뜻한 햇빛을 머금고 자란 나무는 다시 숲으로 자양분을 돌려주기도 하고, 장인의 손길을 거쳐 수십 번의 변형을 통해 한지와 먹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작가들은 한지와 먹으로 작품을 완성하고 나무 그 자체가 조각의 재료가 된다. 나무(한지), 먹이 만나 만들어진 운치 있는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이다”라고 소개했다.
유현 작가는 캔버스 위에 한지를 붙여서 독특한 무늬 혹은 층을 만든 후 먹물을 머금게 해 전통 재료가 가진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한지는 나무껍질을 벗기고, 삶고 두들겨 섬유질을 남겨 만든 종이이다. 나무의 결이 그대로 살아있어 한지 그 자체만으로도 질감, 무늬가 느껴진다. 작가는 이 한지를 부채주름(아코디언 주름)처럼 여러 겹으로 접어 캔버스에 고정시키고 먹이 스며든다.
한지나 종이를 캔버스 위에 붙여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여러 명 있는데 같은 재료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건 신기하다. 유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지 작업을 처음 도전했다. 한지 주름이나 먹의 농도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유 작가의 작업을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왕현민 작가는 건물의 골조에서 영감을 받아 나무의 입체적 곡선이 돋보이는 가구나 설치 작품을 만들어왔다. 도형이 살아 움직이는 듯 생기 넘치는 왕 작가의 가구와 설치 작품은 인기가 많았다. 디자인 페어에서도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품이었다.
이번 전시에선 왕 작가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 거울처럼 비치는 철판 조각과 아름다운 꽃 모양으로 찍은 나무 조각을 연결해 조형미를 극대화했다. 안정적인 구조물, 건축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조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전시는 25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