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 2025-04-22 18:17:03
1978년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 부두로 문을 열고, 지난해 연말 북항 재개발 사업을 위해 비워진 부산항 자성대부두가 ‘퇴역’한 뒤에도 해운항만업계의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다. 화물 하역 이외 선박수리 등 부가서비스를 위한 부산항 시설 부족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22일 부산항만공사(BPA)와 지역 해운항만업계에 따르면 자성대부두가 보유한 5개 선석 활용 방안에 대한 업계 수요 조사와 여론 수렴 작업이 진행 중이다.
BPA는 지난해 연말 자성대부두가 비워진 뒤 육상 부문은 화물 장치장과 물류 창고, 하역장비 제작장, 화물차 임시 주차장 등으로 용도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배를 접안할 수 있는 선석 부문이다. 외항선이 이 선석에 배를 대려면 항만보안구역으로 지정해야 하고, 그에 맞는 시설과 인력을 갖춰 엄정하게 운영해야 한다. 지난해 전체 육상 시설물 철거 후 선석은 아직 보안구역으로 지정돼 있지만 5월 중 해제될 예정이다. 만일 이 선석을 외항선이 계속 사용하려면 약 23억 원에 이르는 보안시설을 설치해야 하고, 매년 약 7억 원 상당의 인건비가 추가로 필요하다. 북항 재개발 2단계 사업이 착공할 때까지 약 3년을 사용한다면 40억 원이 넘는 거액의 예산이 들어가지만, 재개발 사업 후에는 전액 회수할 수 없는 매몰비용이다.
BPA는 선석을 어떻게 활용할지 관련 업계 수요를 조사했다. 부산항 주고객인 외항선사들은 화물을 싣고 내리는 도중 선박 내 부분 용접 등 정비를 할 시간이 부족한 때가 많다며 자성대부두 사용을 요청했다. 부두 운영사들이 선석 회전율을 높이려 12시간 이상 선석을 점유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아, 미처 수리를 끝내지 못한 배는 남항 앞 묘박지를 활용한다. 파고가 높거나 폭풍우가 있을 때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이 수리조선소를 이용해야 하는데, 길이 200m에 이르는 대형선을 수리할 수 있는 도크도 부산에는 감천항에 1곳뿐이다. 여수와 목포, 심지어 중국 등으로 원정 수리를 맡겨야 하는 형편이다.
한국해양플랜트선박수리업협동조합은 BPA에 자성대부두 보안시설 설치비와 인건비를 자부담하겠다며 선석 사용을 요청했다. 크루즈선 수리와 미국 해군함정 유지보수정비(MRO) 계약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는 재개발사업이 불과 3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 선박 수리업계에 해당 선석을 임대할 경우 재개발 착공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변공원 등 시민 친화 시설을 바라는 주변 주민과 지역사회의 요구와도 맞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신속히 선석 활용 방안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반영해 BPA는 자체적으로 보안구역 지정이 불필요한 내항선 위주로 관공선과 급유선 등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하고, 조합 측에 선석 사용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 조합은 지난 21일부터 오는 25일까지 BPA 앞 집회를 신고했다. 부산 해운항만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수리조선 분야 지원이 필요한데, 필요 경비를 자부담하겠다는 제안에도 선석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BPA 관계자는 “부산항 주고객인 외항선사들의 수요를 보자면 보안구역 투자가 필요할 수 있지만, 수리조선업계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고, 재개발 때 회수할 수 없는 예산을 거액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라며 “지역사회와 관련 업계 등 다양한 여론을 수렴해 적절한 활용 방안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지역 항만업계 관계자는 “부산항 고객인 외항선사에 대한 서비스 제공 측면도 있고, 한국의 선박수리에 대한 세계 시장 수요가 늘어날 상황이므로 BPA가 중형급 선박을 안정적으로 수리할 수 있는 접안시설을 조성해 운영하면 부산항 경쟁력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