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2026-09-03 14:43:38
수리상점 곰손에서 <반려 물건> 모호연 작가(오른쪽)와 저자. 저자 제공
저자는 뒤쪽이 낡아 신지 못하게 된 운동화를 털실로 수리해 특별한 나만의 운동화를 만들었다. 저자 제공
모든 물건을 1000원에 판매하는 상점이 생기더니 이제 중국계 온라인몰을 통해 몇 백 원대 상품도 쉽게 구한다. 클릭 한두 번이면 원하는 물건이 다음 날 문 앞에 도착한다. 싸게 쉽게 새 상품을 살 수 있는 세상이니 고장 나거나 성능이 떨어지지 않아도 새 상품으로 대체해버리는 분위기이다. 심지어 집 안 어디에 있는지 몰라 새 상품을 다시 주문하고 결국 같은 상품이 여러 개 발견되는 일도 있다.
그런데 고장 난 상품을 버리지 않고, 수리하는 방법을 배운 후 직접 고쳐 사용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은 서울 망원시장에 수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리상점 ‘곰손’도 운영한다. 각종 전자제품을 비롯해 우산, 운동화, 옷, 생활용품 등을 모두 수리해서 사용한다. 1000원이면 새 상품을 구할 수 있는데 굳이 버리지 않고 수리해서 사용하는 건 중요한 가치와 이유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수리상점 곰손의 운영자이자 전직 영상 감독이다. 저자는 원래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우선 사고 보는 20대를 보냈다. 과도한 노동으로 지친 마음을 소비로 달래다가 늘어난 카드빚을 갚기 위해 투잡, 스리잡을 뛰는 악순환을 이어갔다. 영상 촬영과 제작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이유로 새 장비가 나오면 바로 구입하는 생활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환경운동가 친구를 따라 인도의 쓰레기 줍는 여성들을 만나며 심각한 쓰레기 문제를 목격한다. 버리는 사람 따로 처리하는 사람 따로인 불평등한 쓰레기 문제를 목격하고 일상에서 가급적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것이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선 우선 가지고 있는 물건을 오래 써야 한다는 사실을 느끼자 자연스럽게 고쳐쓰기, 즉 수리로 관심이 확장된다.
한국에 돌아온 후 저자의 관심이 실천으로 연결된 사건이 발생한다. 구입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새 아이폰을 바닥에 떨어뜨려 뒤판이 깨진 것이다. 서비스센터에선 부분 수리는 안된니 새 것을 사라고 말한다. 사설 수리점을 검색한 끝에 뒤판을 교체했지만 찜찜했다. 알고 보니 기업은 새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수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고, 미국과 유럽은 ‘수리할 권리’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추진하며 자원 재활용과 환경 보존에 나서고 있었다.
수리권에 대한 인식이 드문 한국의 상황이 안타까워 결국 저자가 나선다. 애플 덕후이자 아이폰 수리로 유명한 서강잡스 김학민 대표를 만나 아이폰 수리 워크숍을 진행한다. 워크숍에 온 이들은 비싼 아이폰을 여는 것조차 두려워 손을 떨 정도로 긴장했지만, 결국 배터리를 교체하며 자신의 오래된 아이폰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물한다. 그렇게 밀양, 대구, 전주, 지리산까지 전국으로 아이폰 수리 교육 출장을 다니고 있다.
우산 수리 장인의 노하우를 배워 곰손 상점에서 정기적으로 우산 수리 교육을 진행하고 옷수선 사장님, 전파사 사장님 등 수리 장인들을 모셔 수리 페스티벌도 연다. 흥청망청 쓰고 버리는 축제가 아니라 나누고 고치는 축제에 많은 이들이 감동한다.
공장에서 똑같이 찍은 상품이지만, 수리를 거치면 새로운 고유성이 생기고 물건과 주인은 특별한 관계가 된다. 저자는 모호연 작가의 책 제목을 가져와 ‘반려 물건’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단순히 소유의 의미를 넘어 끝까지 함께하기 해 노력하며, 고장나고 낡더라도 고쳐서 내 손때가 묻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수리를 뜻하는 영어 단어는 ‘다시’라는 의미와 ‘준비하다’라는 의미가 합쳐진 말이다. 끝내는 일이 아니라 다시 준비하는 일이다. 작가의 수리 여정은 매일 실패하고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직접 고치며 삶의 감각은 생생해졌고 마음의 균열도 회복되었다. 부서진 물건에 관심을 갖는 것, 버려진 물건을 되살리는 것은 나를 고쳐가는 과정이자 내 삶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수리하면 할수록 저자의 세계가 달려졌고, 여러 사람의 수리가 더해지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유혜민 지음/문학동네/256쪽/1만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