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행정이 놓친 것들 [김은영의 문화시선]

사과문과 ‘회색지대’로 읽는 문화행정의 현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2026-09-06 13:55:26

2026부산비엔날레 공식 개막 다음 날인 8월 30일 오후, 부산현대미술관 1층 전시실 류성실 작가의 '만 가지 꿈' 전시 구역에 '작품 점검 중'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당시 현장 안내원은 2026부산비엔날레 공식 개막 다음 날인 8월 30일 오후, 부산현대미술관 1층 전시실 류성실 작가의 '만 가지 꿈' 전시 구역에 '작품 점검 중'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당시 현장 안내원은 "작품이 고장 났으며 수리 완료 시점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은영 기자 key66@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양대 비엔날레 무대가 개막 초반부터 휘청이고 있다. 한쪽은 외교적 반발을 우려해 ‘대만관’이라는 이름을 은근슬쩍 바꿨다가 다시 복원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검열 논란과 중국관 철수라는 파문을 자초했고, 다른 한쪽은 리프트 안전성 확보를 위한 시설 보강 작업 중 작가의 작품을 손상해 공식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세계를 향해 다채로운 담론을 펼쳐 보이던 무대의 한편에서, 정작 예술과 작가의 자리는 조직의 관성과 서툰 대처 뒤로 밀려난 듯 보인다. 개막과 함께 씁쓸한 논란의 중심에 선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의 현주소다.

그러나 두 사태를 같은 잣대로만 묶어 비판하기엔 대응의 성의와 온도가 다르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이 대만 측과의 투명한 소통 없이 '대만관' 명칭을 주관 기관명인 '국립대만미술관(NTMoFA)'으로 바꿔 조용한 우회를 시도하다 양안 갈등의 풍랑을 맞고 중국 전시팀의 전격 철수라는 안타까운 파행을 자초했다면, 부산비엔날레의 사후 대응은 그나마 솔직했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사무처가 게시한 사과문. SNS 캡처.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사무처가 게시한 사과문. SNS 캡처.

물론 부산의 과정 역시 처음부터 순탄하진 않았다. 올해 부산비엔날레 참가 22개국 46명(팀) 가운데, 개막 전 프레스 투어와 부산시장 등 주요 내빈 투어에서도 가장 큰 화제를 모으며 일찌감치 주목받은 대표작이 바로 류성실 작가의 ‘만 가지 꿈’이었다. 그러나 안전성 보강 작업 끝에 12대의 마네킹 중 1대가 고장 나는 과실이 발생했고, 8월 30일 퍼포먼스 관람과 보충 취재를 위해 필자가 부산현대미술관 메인 전시장을 다시 찾았을 때 현장에는 작가와의 사전 협의 없이 차단봉이 세워져 있었고 '작품 점검 중'이라는 모호한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개막 초반이라 빠른 복구를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겠으나 결과적으로는 미숙했던 현장 대응의 한계였다. 하지만 작가가 이메일로 항의하자 조직위원회는 사과문 게시를 발 빠르게 결정하여 실행에 옮겼다. 또한 9월 1일 이후 작동이 멈춘 작품을 정상화하고자 자체 대응의 한계를 인정하고, 서울의 전문 테크니션과 협의해 긴급 정밀 복구에 나섰다. 나아가 9월 5일 사무처 명의의 공식 사과문을 3개 채널에 게재하는 한편, 집행위원장은 조직의 수장으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해 직접 작가를 만나 깊은 사과의 뜻을 전했다.

훌륭한 작품들로 채워진 전시의 만듦새에 비한다면 참으로 뼈아픈 오점이었다. 사고 발생 자체가 작가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임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초기 실수를 인정하고 전문 기술자를 투입해 복구에 힘쓰며 작가가 지정한 공간에 고개를 숙인 수습 태도는, 불통으로 일관하던 기존 전시 행정의 관성에 비춰볼 때 지극히 타당하고 필요한 '최소한의 상식과 도리'였다.

부산현대미술관 1층에서 만날 수 있는 류성실의 '만 가지 꿈'.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현대미술관 1층에서 만날 수 있는 류성실의 '만 가지 꿈'. 김은영 기자 key66@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지난 5일 개막한 광주비엔날레 대만관 전시 '인스턴스 던전: 회색지대' 전경. 연합뉴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지난 5일 개막한 광주비엔날레 대만관 전시 '인스턴스 던전: 회색지대' 전경. 연합뉴스

두 현장을 관통하는 씁쓸한 잔상은 여전히 깊다. 부산에서 멈춰 섰던 류성실의 ‘만 가지 꿈’은 개인에게 국가의 가능성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강박을 비튼 작품이다. 우여곡절 끝에 개막한 광주 대만관의 주제 역시 대만이 처한 지정학적 긴장을 다룬 ‘회색지대’였다. 관람객을 추적하는 기계의 시선을 다룬 정센위나 데이터의 변형을 말하는 린위량처럼, 작가들은 감시와 통제의 윤리를 정면으로 물었다.

작품들이 말하고자 했던 성취의 강박과 감시, 회색지대의 불안이 정작 그 전시를 품은 비엔날레 재단들의 행정적 파행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시스템의 조급함과 정무적 셈법으로 파행을 겪던 전시가, 부산의 공식 사과문과 광주 예술가·시민들이 이끌어낸 정체성 수호로 완결되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한국 문화행정의 현실을 증명하는 역설적인 퍼포먼스처럼 다가온다.

5일 전남광주 여수시 진모지구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 국제교류섬에서 관람객들이 문을 닫은 중국관 옆으로 이동하며 다른 국가 전시관을 관람하고 있다. 중국 저장성 저우산시는 광주비엔날레 '대만 파빌리온' 명칭 논란에 반발해 섬박람회 홍보관 운영을 취소했다. 연합뉴스 5일 전남광주 여수시 진모지구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 국제교류섬에서 관람객들이 문을 닫은 중국관 옆으로 이동하며 다른 국가 전시관을 관람하고 있다. 중국 저장성 저우산시는 광주비엔날레 '대만 파빌리온' 명칭 논란에 반발해 섬박람회 홍보관 운영을 취소했다. 연합뉴스

광주의 실패와 부산의 '뒤늦었지만 정직한 사과'는 중요한 이정표를 남겼다. 행정적 안위나 외교적 성과라는 '국가의 과업'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존중이다. 실수 속에서도 과오를 직시하고 작가를 향해 고개를 숙인 부산의 태도가, 광주의 서늘한 불통을 넘어 한국 현대미술이 작가를 대하는 최소한의 상식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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