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봉양하느라 꿈은 포기" 국가 차원 돌봄 시스템 절실 [꿈을 저당 잡힌 '영 케어러']

하. 돌봄 재난, 사회가 부담해야

지자체·학교와 연계 사례 발굴
10대 돌봄 청년 우선 지원하고
관련 정책 홍보 정보 소외 막아야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2025-02-03 18:19:44

영케어러 A(24) 씨가 아버지가 사용하던 방을 정리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영케어러 A(24) 씨가 아버지가 사용하던 방을 정리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미술교사를 꿈꾸던 A(24) 씨는 2년 전 임용 준비 중 아버지가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뒤이어 평소 건강이 좋지 않던 할머니에겐 치매가 찾아왔다. 당장 가족 돌봄과 간병, 생계까지 A 씨가 도맡아야 했다. A 씨는 대학 생활을 할 때도 가족이 항상 눈에 밟혔다고 했다.

미술학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짬을 내 그림을 그려 파는 일을 해 왔다는 A 씨는 “가족이 언제 확 아플지 몰라 정해진 시간을 비워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며 “어렴풋이 인생의 목표와 꿈마저 희미해져가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나마 A 씨는 학교가 관련 지원책을 적극 연계해 도움을 받은 경우다.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이리더’ 사업에 추천했고, 학창 시절 학습비, 생활비 등 재단의 지원을 받으며 원하는 대학교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 케어러’ 다수는 어디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유관 기관 지원책과 지자체 조례 등이 마련돼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지원책을 몰라 간병과 봉양 부담에 내몰리는 일이 허다하다.

예컨대 65세 이상 중증 질환자 가운데 소득이 최저 생계비에 못 미치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요양원에 무료 입소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 ‘일상 돌봄 서비스’는 소득과 관계없이 돌봄이 필요한 중장년과 영 케어러를 대상으로 한 긴급돌봄을 제공한다. 그러나 영 케어러 상당수가 이런 지원 제도를 몰라 조부모 간병과 봉양 부담을 떠맡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팀 박문호 과장은 “청년들이 제도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알아도 손을 뻗을 힘 조차 없는 청년들도 많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2년 초 가족 돌봄 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하고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3년이 지나도록 가시적인 변화는 없다. 부산도 상황은 비슷하다. 부산 중구에서는 2021년 전국 최초로 영 케어러를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부산시는 지난해 7월 조례 제정, 시행했다. 그러나 뚜렷한 후속 대책이 없어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영 케어러 문제를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청년정책을 연구한 서울연구원 김승연 연구위원은 “치매 조부모나 알코올 중독 부모를 돌보는 일을 자녀나 손주에게 떠넘기지 말고 국가·지자체가 분담하는 게 마땅하다”며 “영 케어러를 국가가 사회가 책임지기 어렵다면 최소한 부담을 덜어줄 시스템부터 1차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10대 영 케어러부터 초점을 맞추자고 입을 모은다. 그들이 가장 ‘약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사례 발굴과 지원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 학교 등이 연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서울연구원 이봉조 연구위원은 “지역 내 영 케어러를 발굴·지원할 수 있도록 지역 사회의 교육시설, 지자체, 복지 단체가 연계하는 등 시스템화된 지원 조직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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