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2025-03-29 13:01:07
28일 오후 2시간 20여 분에 걸친 개막 공연으로 2025년 통영국제음악제가 화려하게 개막했다.
음악제가 시작됐으니 통영은 바야흐로 봄이다. 하지만 음악은 사뭇 음울하고, 비장했고, 또한 아름다웠다. 통영국제음악제의 모태가 된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서곡’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신드롬의 주인공 임윤찬이 협연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그리고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곡도 수월한 게 없었다. 객석은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를 쏟아냈다.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구성원으로 참여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 단원들과 악장을 맡은 베를린 필하모닉 바이올리니스트 한데 퀴덴(Hande Kuden)이 무대로 들어서자, 관객들은 그때부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특히 이날 지휘를 맡은 프랑스 출신 지휘자 파비앵 가벨은 두 팔을 번쩍 들어서 관객 박수에 화답한 뒤 지휘석에 올랐다.
첫 곡은 윤이상 작곡가의 ‘서곡’이 장식했다. 1973/1974년 작곡된 ‘서곡’은 윤이상의 작품 세계가 동아시아적 아이디어를 결합한 데서 한국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쪽으로 변화할 때 과도기에 있던 작품이다. 그 사이 윤이상은 1967년 동베를린 사건으로 한국에서 옥고를 치르고 1969년 독일로 추방됐다. 그런 영향인지 ‘서곡’은 암울함이 가득했다. 현악이 어두운 분위기를 형성하는 가운데 바순, 클라리넷, 플루트 등의 관악기, 팀파니, 마림바 등의 타악기가 끼어들며 분위기를 유지해 나갔다. 고요하게 시작한 곡은 점점 많은 악기가 합주하며 음을 더해 갔지만, 그 암울함을 지우지는 못했다. 가벨은 ‘서곡’을 지휘봉 없이 맨손 지휘했다.
‘서곡’ 연주 후 무대를 정비한 뒤 통영국제음악제 상주 연주자 임윤찬이 가벨과 함께 등장했다. 관객들은 더 큰 함성으로 그를 맞았다. TFO와 임윤찬이 협연한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교향곡 1번의 대실패 후 깊은 우울증과 슬럼프에 빠졌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을 치료해 준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헌정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임윤찬은 반복적으로 울리는 여덟 소절의 단조 화음으로 1악장을 시작했다. 한 음, 한 음 강렬하고 묵직했다. 피아노 소리가 점점 커지자, 현악 등 다른 악기들이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멜로디를 펼쳐 나갔다. 임윤찬의 몸 움직임은 크지 않았지만, 연주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때로는 서정적으로, 때로는 유장하게 슬픔을 꾹꾹 눌러 담는 듯했다.
2악장은 보다 서정적인 분위기였다. 오케스트라가 문을 열고 피아노가 아름다운 선율을 이어 나갔다. 플루트와 클라리넷 등 관악기들이 멜로디를 제시하고 피아노가 이를 받쳤다. 한층 여유로워진 임윤찬은 자신의 몫인 피아노를 연주하면서도 플루트와 클라리넷 연주자를 응시하는 등으로 오케스트라와 적극 교감했다.
3악장은 현악을 시작으로 경쾌하고 힘 있는 분위기로 전환됐다. 서정적인 멜로디도 오가면서 슬픔을 딛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듯했다. 임윤찬은 힘 있고 풍부한 연주를 이어 나갔다. 때로는 한 손을 머리 위로 치올리고, 의자에서 몸을 들썩일 정도로 격정적이었다. 지휘자 가벨도 힘찬 손짓으로 절정으로 치달았다.
임윤찬은 연주를 마치자 지휘석에 올라가 가벨과 뜨겁게 포옹했다. 땀범벅이 된 그의 양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 그에게 관객들은 환호성과 기립박수를 보냈다. 임윤찬은 관객들의 호응에 화답해 앙코르곡으로 리스트의 ‘순례의 해’ 두 번째 해 ‘이탈리아’ 중 페트라르카 소네트 104번을 연주했다. 반짝반짝 빛나던 임윤찬이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1부 공연이 끝난 뒤 로비에서 만난 진은숙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은 “(임윤찬이) 통영에 도착한 뒤 연습할 때 객석에서 몇 시간 동안 혼자서 지켜봤는데 그때도 감동 그 자체였지만, 오늘도 정말 대단했다”면서 “점점 좋아지는 임윤찬이어서 앞으로도 정말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장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도 모습을 드러냈다. 문 전 대통령 부부는 이날 1층 객석에서 개막 공연을 관람했다.
이날 마지막 곡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이었다. 네 대의 호른에 이어 바순, 트롬본, 그리고 다른 목관악기들과 트럼펫이 연주하는 날카롭고 우렁찬 팡파르로 문을 연 뒤 춤곡의 리듬으로 관객들을 끌어나갔다. 현악기를 활로 켜지 않고 손가락으로 뜯는 피치카토 주법만 연주한 3악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관객들은 통영국제음악제의 문을 연 오케스트라에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한편 통영국제음악재단은 통영국제음악제 기간 유튜브를 통해 개막 공연을 비롯해 13개를 실시간으로 생중계하고 있다. 개막 공연도 실시간으로 중계됐는데, 아쉽게도 임윤찬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송출에서 제외됐다. 공연장에서 만난 한 음악가는 “임윤찬의 출연이 득인지 실인지 잘 모르겠는데, 덕분에 개막 공연 티켓 구매에 실패해 블랙박스 공연부터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관람을 시작했다”면서 “더욱이 임윤찬 공연의 경우 유튜브 생중계까지 제외해 속상했는데 너무 신비주의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통영=김은영 기자